기자조선의 역사 (4) - 조선에 온 기자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3/10/25
기자가 조선에 왔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지금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전근대의 한국인들은 모두 기자가 조선에 와서 왕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여러 행적이 만들어졌다. 그 행적을 알아보자.

상나라는 흰색을 숭상했다고 한다. 기자가 무왕에게 설파한 홍범구주에는 오행(五行)이라는 것이 나온다. 오행은 월화수목금토일에서 화수목금토의 다섯 가지 기운으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다. 나라도 오행이 있는데 상나라의 오행은 금(金)이었다. 상나라를 무찌르고 천하를 차지한 주나라의 오행은 화(火)였다. 불이 금을 녹이기 때문이다.

금의 색은 백(白)이다. 그래서 기자가 다스린 조선도 백색을 선호하게 되었다. 백의민족이라는 말도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다. 뒷날 오행의 개념에 따라 백색을 입으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백색은 오행에 따르자면 서쪽의 색이다. 조선은 동쪽에 있으니까 동쪽의 색인 청색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천년을 입어온 흰색 옷이 갑자기 바뀔 리가 없어서 몇 번이나 푸른 옷을 입게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기자는 흰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등나무 지팡이 한 쌍을 가지고 조선에 왔다고 한다. 흰색으로 도배한 이유는 물론 백색을 숭상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가지고 온 등나무 지팡이는 평양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나중에 부러졌는데 잘 동여매서 칠갑에 넣어 보관했으며, 감사가 관아를 나갈 때면 기병 두 사람이 각기 가지고 앞장 섰으며, 빈객이 방문하면 섬돌 위에 주칠목으로 받쳐서 세워놓았다. 아쉽게도 임진왜란 때 잃어버렸다. (일본 어딘가에서 발견될 것인가!)

기자가 달랑 혼자 온 것이 아니다. 5천 명이 그를 따라왔다. 환웅은 3천 명이 따라왔으니 그보다 많이 온 것이다. (환웅을 따라온 것은 귀(鬼)이고 기자를 따라온 것은 사람이라는 차이는 있다.)

이들 오천 명은 특수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시·서·예·악·음양·복서와 기술·예술 등을 다루는 재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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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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