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꾸' 던지던 회계 아가씨 - 엄마와 페미니즘 하기(4)
2022/07/20
'월남치마'에 '보로꾸' 담던 대학생
"(플리츠 롱스커트를 입고)엄마, 이 치마 어때?"
"잘 어울리네. 엄마 대학 다닐 때도 월남치마 많이 입었는데."
"이게 월남치마야? 그때 유행이었어?"
"치마폭이 넓어서 보로꾸를 많이 담아 나를 수 있었거든."
"보로꾸는 또 뭐야?"
엄마의 대학 시절은 어땠기에 ‘월남치마’에 ‘보로꾸’를 담고 날랐다는 걸까. 지난 호에서 말한 대로 엄마는 주간반으로 편입하여 대학교 2학년 1학기부터 낮에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단숨에 전산과 ‘인싸’가 된 엄마는 캠퍼스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지만 하수상하던 시절, 곳곳에서 독재타도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엄마와 친구들도 중간고사를 보이콧하고 교문 밖으로 나갔다.
"벽돌을 보로꾸라고 했어. 엄마 학교에서 서면 쪽으로 가는 길에 벽돌 공장이 있었는데 공장에서 안 쓰는 깨진 벽돌을 주워다가 가방에 담아서 서면까지 걸어갔지. 서면에 가면 저 앞에는 전경들이 쫙 진을 치고 있는 거지. 남자 선배들이 앞줄에 서서 벽돌을 던지고 여학생들은 벽돌을 앞쪽으로 날라주는데 한번에 많이 날라야 하니까 치마폭에 담아다가 그대로 뛰어가고 그랬지. 그래서 월남치마를 많이 입었어."
그랬다. 때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전국 곳곳에서 피어오르던 때. 엄마의 캠퍼스 생활은 몇 달만에 야외 투쟁으로 바뀌었다.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치기도 하고 최루탄 가스를 피해 골목 안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허겁지겁 아무 식당이나 슈퍼로 들어갔다고 한다. 가게 주인은 셔터를 내리거나 전경에게 거짓말을 하며 학생들을 숨겨줬다. 고생한다며 밥을 얻어먹은 때도 있다고 한다.
"최루탄 가스 그게 얼마나 독한지, 눈물 콧물 침 다 흘리고 매운 거 막아보겠다고 눈 밑에 치약을 바르고 그랬어. 담배 연기가 매운 거 중화시켜준다 그래 가지고 얼굴에 대고 담배 연기 피워주고. 그래도 또 거리로 나가서 데모했지. 아침이슬도 많이 불렀고, 노래에 대머리, 주걱턱 가사를 넣어서 부르고 그랬어. 대머리, 주걱...
선천적 예민러, 프로불편러, 하고재비. '썬'을 이름으로 자주 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가만히 있기와 시키는 대로 하기는 특별히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