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냄새를 풍긴다는 이 말에 공감이 되면서도 슬퍼집니다. 황희 정승이나 유성룡 같은 분들의 청렴결백한 가난을 선비의 덕목으로 우러렀던 우리 민족이 어쩌다 물질주의 가치로 가난을 바라보고, 냄새로까지 비유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이런 우리가 슬퍼집니다.
예전에 힘든 일이 있으면, 사람이 많이 붐비는 시장을 한 바퀴 돌곤 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보따리를 풀어놓고 이것저것 팔고 계신 분들의 삶에 그을린 얼굴, 새벽부터 치열하게 살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삶에 힘을 얻곤 했습니다.
그분들의 가난은 내게 냄새가 아니라 향기였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소중한 것들, 나누고 배려하고 돌아보게 만들고, 삶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초대의 향기!
학생들에게 고전 문학을 강의해야 하는 저로서는, 사실 사대부들의 '안분지족'이나 '안빈낙도'와 같은 청빈함을 예찬하는 정서엔 그것을 가능케 한 노비들의 노동이 은폐되어있음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이 덕목일 수 있는 건, 가난으로 굶어죽기 전까지일 테니까요. 해서 가난이 '낭만화'되는 것을 부단히 경계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들의 삶은 어느 면에서 분명 향기롭습니다. 그 삶들에서 향기를 빼앗아 가는 것이 또한 가난이라는 악취임을 말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