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댄서
서툰댄서 · 네트워크를 꿈꾸는 자발적 실업자
2023/03/01
제 생각엔 어떤 대상을 함량 미달이라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함량이 충분한 근거로 비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글에 그렇게 충분하고 객관적인 근거들이 담겼는지 의문이 듭니다. 

우선 청년정치를 비판하는 논리는 청년정치의 정체가 모호하다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청년정치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쓸모라는 것은 청년세대를 대표, 대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할은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깝다. 세대라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며 뻔한 얘기나 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에선 지금껏 ‘청년정치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논의된 바가 없다. 

이렇게 전제하신 다음에 청년정치의 유래와 역사를 제시하면서 청년정치가 보수주의의 알리바이가 되었다는 쪽으로 논의를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청년정치가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것은 제가 잘 모르긴 하지만 그런가보다 할 수 있겠는데, 그 이후에 진행되는 청년정치에 대한 규정들은 본인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담은 하나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보수주의의 알리바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듯 말듯 하고, 그런 결론이 나오는 논리도 잘 잡히지 않습니다. 논리가 뚜렷하게 이해되지 않으니까 반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박 형식으로 쓰는 대신, 제가 생각하는 청년정치에 대한 대안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청년정치의 필요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청년의 입장이 기성세대와 다르니 그 입장을 더 깊이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는 청년 정치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성비를 맞추고자 하는 정책들과 궤를 같이 합니다.
다른 하나는 시대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기성의 관점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관점과 유연성을 가진 청년들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39세에 프랑스 대통령이 된 마크롱, 42세에 캐나다 자유당의 당수가 되고 3년 후 총리가 된 트뤼도, 37세에 뉴질랜드 총리가 된 저신다 아던 등의 예처럼 다른 나라들에서도 젊은 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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