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교실] 토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

오혜민
오혜민 인증된 계정 · 여성학자, 한예종의 페미니스트 선생
2023/03/24
이번 학기 강의 내용을 거의 다 준비해뒀지만, 유독 후반부의 토론 질문만큼은 아직 다 정하지 못했다. 몇 년 전 강의를 시작한 이래로 나는 늘 그랬다. 수업 시작 몇 시간 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질문이 만들어졌다. 그 당시의 질문들은 정해진 수업 시간을 훌쩍 넘겨 해가 질 때까지 불붙을 정도로 강렬한 토론으로 이어지긴 했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첨예한 만큼 그 토론은 더 섬세하게 기획되어야 했다. 

나는 그 강렬함이, 그 치열함이 오히려 두려웠다. 


존재로 주제를 대표하는 인물들

많은 경우 토론의 주제는 소수자 집단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해졌다. 자신의 존재, 행위,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주제와 공간이 토론 주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그 자체로 특권이었다. 많은 경우 토론의 주제가 되는 많은 존재는, 실제로 그 공간에 없거나 마치 그 공간에 없는 것으로 상상되었다. 물론, 그리고 당연히 어떤 경우에는 그 존재가 해당 공간에 있기도 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그 주제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경우 그는 자기를 치밀하게 방어하는 능력을 발휘해야만,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상대의 시선에서 크게 거슬리지 않아야만, 그 토론에서 '이길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미 그 인물은, 무엇을 어떻게 해도, 도저히 상대를 이길 수 없었다. 당사자로서 자신의 입장을 설파하면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 '중립적'인 태도가 기대되는 토론의 장에서 진 것으로 손쉽게 간주되었다. 그래서 그 공간에 존재하더라도, 당사자더라도, 토론의 주제가 이미 불쾌하더라도 각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자신의 감정을 차단하며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과업을 하나 더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위장술을 잘 수행하며 논리적 허점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이 누군가에게 있다면, 그 토론의 장이 이미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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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입장을 해석하고 번역하는 연구자, 존중의 공간을 만드는 선생을 목표로 반 페미니즘 백래시, 여성 청년, 교차성, 이주, 페다고지를 탐색한다. 도서 <벨 훅스 같이 읽기> <지금 시작하는 평등한 교실>, <Unbekannte Vielf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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