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댄서
서툰댄서 · 네트워크를 꿈꾸는 자발적 실업자
2023/03/17
촘스키(와 그 공저자들)의 머신러닝 비판을 두번 읽어보았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노대가 분이 21세기 최첨단의 기술에 대해 비판을 내놓으시는 것에 대한 경탄이었습니다. 촘스키 옹께서 태어나신 해가 1928년이라고 하니, 올해 만으로 95세가 되십니다. 이 연세에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그에 대한 의견을 주장하신다니, 멋지신 것 같습니다. 처음에 대략 읽어보기엔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귀담아들을 만한 주장을 펼치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귀담아들을 만한 주장이니 뉴욕타임즈에 실리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얼룩소 대문에 걸린 걸 보고 두번째 읽을 때의 인상은 주장의 포인트가 애매하고 논거가 불명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문에 걸려 있는 시간이 지나가 타이밍을 좀 잃긴 했지만, 이에 대한 제 생각들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주장의 포인트가 애매하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주장하려는 것인지 메시지가 불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스템들이 윤리성은 부재하고 언어학적으로도 무능한 가짜 과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의 열풍에 그저 웃거나 울 밖에 도리가 없다. 

마지막 문장을 결론으로 간주한다면, 윤리성이 부재하고 언어학적으로도 무능하다는 가짜 과학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들의 열풍에 웃거나 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1차 산업혁명을 가져온 증기기관이나 2차 산업혁명을 가져온 전기시스템을 두고 윤리성이 부재하다고 해서 그에 대해 웃거나 울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어색합니다. 또한 이들 시스템은 언어학적으로 아마도 무능하겠지만(증기기관한테 언어학적 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고 무능한 가짜과학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도대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기술의 열풍에 웃거나 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의 뜻을 짐작해 보자면, 이 기술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지 않을까 합니다. ChatGPT나 그와 유사한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나 서비스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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