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검열 시대의 <오발탄>

윤지연 · 교사
2023/12/22
<오발탄>
문화검열 시대의 <오발탄>

검열 문제에 있어서 지배의 체계속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검열하는 검열의 내면화, 즉 자기검열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다. 강진호(2004)에 따르면 전후 현대문학은 반공주의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있었고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는 공간이 반공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이고 작품 역시 그런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압력 속에서 작가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으로 스스로를 검열하고 억압적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침묵하거나 소극적인 방식으로 관련 주제를 다룰 수 밖에 없게 된다. 박완서, 조정래 등 많은 작가들이 반공주의의 창작에 대한 영향을 밝혔지만 이범선에게 그러한 자기검열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 시대를 경유하는 창작자로서 그리고 특히 그가 월남 작가라는 점을 미루어 보아 어느 정도의 자기검열이 작동했을 수 밖에 없을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밖에 국가권력에 의한 정치적, 제도적 검열이 아닌 특정한 집단이나 주체에 의해 검열을 당하거나 풍속검열에 해당하는 필화도 존재한다. 이범선의 경우, <오발탄>이 발표되고나서 당시 재직하던 기독교 재단인 대광고교 교사직을 사직하게 되는데 작품의 말미에 철호가 “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독백을 교회에서 문제 삼아 신의 전지전능함을 부정하는 발언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기독교 신자였던 이범선은 이에 대해 그러한 의도성이 없음을 역변했지만 주위의 시선과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당시 기독교는 이승만 정권의 노골적인 특혜를 받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형목제도와 군목제로를 통해 선교의  특권을 누리게 했으며 1949년에는 성탄절을 공식 휴일로 지정하고 1954년, 1956년에는 각각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을 개국했다. 

4.19이후에도 개신교계는 여전히 독재자 이승만에 대한 지지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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