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이 그리는 소심한 이불킥
2023/11/27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력다툼을 하는 정치인들의 이미지는 익숙하다. 서로의 권력 배분에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려 난투를 벌이는 자들의 행태에 지쳐 눈을 돌린 이들도 상당수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고 권력의 경우 그 강도가 더 세다. 눈먼 것으로 만들어 제 주머니를 채우기 용이한 자리에 올랐을 때 인간이 얼마나 악독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여느 나라가 그렇듯 한국의 민주화도 국민의 엄청난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그 역사의 길이는 짧디 짧아 자주 회고되곤 하는데 이 영화도 손익을 따졌을 때,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주제 선정이라 일컬을 수 있다.
한국의 다사다난한 역사 특성상 가장 극적인 지점을 추려보면 대개 ‘국민이 짓밟힌’ 경우가 대다수로, 해당 영화는 박정희의 사망 후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으로 이어지는 시점을 그렸다. 직접적인 무력충돌이나 시민의 반발 없이 어떻게 반란이 성공할 수 있었는가?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반란은 성공했으며 전두환은 명목 상 대통령 직을 수행했으며 노태우를 자신의 다음으로 앉히는 등 이미 지나온 역사가 뒤안길로 사라졌으니 대중은 그저 불합리한 정권의 이양까지로만 알고 있게 된 거다. 영화에서도 감독은 상상을 덧붙인 각색이라 하였으니 100퍼센트 정확한 그날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던 당사자뿐만이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는 정보의 통제, 기밀로 분류된 역사를 낱낱이 알 필요가 있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그날의 역사를 톺아보며 어느 정도는 양념이 가미되었을 영화를 통해 말이다.
인간은 강력한 리더가 자신을 이끌어 주길 원한다.
극에서는 전두광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으나 전두환을 알아채지 못할 이는 없다. 전두광이 말하는 대사의 리더는 ‘지배’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박정희가 사망했고 본인이 죽기까지 은닉재산을 축적하는...
김영삼이 아니었으며 더 떵떵거리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의 봄을 보고 전두환 같은 강력한 리더쉽이 인상적이고 경제 발전 시켰다고 빠는 직장 동료를 보았습니다. 저는 전두환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를 보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김영삼이 아니었으며 더 떵떵거리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의 봄을 보고 전두환 같은 강력한 리더쉽이 인상적이고 경제 발전 시켰다고 빠는 직장 동료를 보았습니다. 저는 전두환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를 보면 가슴이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