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 비판 없이 전세사기 해결은 불가능하다
2023/04/17
영화 <싱크홀>은 서울 한복판에 생긴 큰 구멍 아래로 빌라가 통째로 빠져버리는 이야기다. 제목이 내용인지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견되어 있었지만, 영화는 굳이 빌라의 미래를 암시하는 대화를 도입부에 삽입한다. 직장 상사 동원(김성균 분)의 내 집 마련 집들이에 초대받은 승현(이광수 분)은 축하만 해야 할 자리에서도 다그친다. 그 돈으로 아파트를 사야지, 빌라를 매매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이다. 그 빌라, 결국 사달이 난다.
빌라 사는 사람이라면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정도로 빌라는 동네북이다. 누가 SNS에 ‘드디어 내 집 장만’이라는 소식을 알렸다고 하자. 그게 빌라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다. 빌라 살면, 알아서 안 한다. 어디에 산다(live)는 걸 가지고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지 않는 게 상식이겠지만, 한국에선 빌라를 사는(buy)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물 흐르듯이 해석된다.
그래서 누구는 우쭐거리고, 누구는 위축된다. 언젠가부터 빌라는 아파트에 살지 못해서, 아파트로 들어갈 돈이 없어서 ‘머무르는’ 기착지로만 취급받는다. 모두가 같은 기준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빌라 거주자에게 이러쿵저러쿵 부동산 투자의 원칙을 설교하기 바쁘다. 그러니 빌라 사는 당사자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중에 아파트 가야죠’라고 말을 덧붙인다. 욕 안 먹는 건, 빌라 전체를 통으로 살 때 정도일 거다. 그것도 세입자 보증금 끼고 아주 저렴하게, 그래서 '갭투자로 매달 월세 수익이 얼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 이런 사람이 '늘수록'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피해자도 당연히 증가한다.
그래서 누구는 우쭐거리고, 누구는 위축된다. 언젠가부터 빌라는 아파트에 살지 못해서, 아파트로 들어갈 돈이 없어서 ‘머무르는’ 기착지로만 취급받는다. 모두가 같은 기준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빌라 거주자에게 이러쿵저러쿵 부동산 투자의 원칙을 설교하기 바쁘다. 그러니 빌라 사는 당사자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중에 아파트 가야죠’라고 말을 덧붙인다. 욕 안 먹는 건, 빌라 전체를 통으로 살 때 정도일 거다. 그것도 세입자 보증금 끼고 아주 저렴하게, 그래서 '갭투자로 매달 월세 수익이 얼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 이런 사람이 '늘수록'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피해자도 당연히 증가한다.
빌라에 왜 거주하는지를 해명하는 것도 억울한데, 빌라 살다가 봉변마저 당한다. 집으로 날아온 이상한 통지문에는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추후 금융권부터 변제되니 보증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친절하고 충격적인 설명이 적혀 있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 등기부등본을 보면서 이 정도면 문제 될 거 없다면서 안심을 시켰던 공인중개소는 사라졌다. 세입자는 전 재산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여럿이다. 같은 동네에 수백, 수천 명이다. 조직적인 사기행각에 누군가는 전 재산을 잃는다. 피해자들 중에는 생애사적 단계에서 빌라를 선택할 확률이 높은 젊은 세대와 신혼부부가 많다. 극단적인 선택도 이어진다. 사회생활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사람들 등 처먹는 나쁜 사람들의 범죄로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이 사건은 규모의 문제일 뿐 그 속성은 한국의 부동산 문화와 별로 다르지 않다. 나쁜 개인의 일탈 이전에 부동산 공화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음을 부정해선 안 된다.
빌라를 수백 채를 보유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갭투자’ 때문이다. 전월세 세입자의 보증금을 '끼고' 거래되는 이 방식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투자의 비법처럼 소개되진 않았다. 하지만 집값이 급등하면, 작년에 2억 집을 3천만 원만 내고 산 아무개가 전세금 올려 받은 목돈으로 외제차 끌고 다닌다. 그러면서 '열심히 산 보람이 있네'라는 황당한 말들을 당당하게 뱉는다. 운이 능력이 되니 목소리는 커진다. 그때부터 세입자 끼고 매매하는 방식은 '갭투자'라는 멋스러운 단어로 포장된다. 빌라왕 사건은 이 속성이 악랄해진 것에 불과하다.
빌라를 수백 채를 보유하는 게 가능한 이유는 ‘갭투자’ 때문이다. 전월세 세입자의 보증금을 '끼고' 거래되는 이 방식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투자의 비법처럼 소개되진 않았다. 하지만 집값이 급등하면, 작년에 2억 집을 3천만 원만 내고 산 아무개가 전세금 올려 받은 목돈으로 외제차 끌고 다닌다. 그러면서 '열심히 산 보람이 있네'라는 황당한 말들을 당당하게 뱉는다. 운이 능력이 되니 목소리는 커진다. 그때부터 세입자 끼고 매매하는 방식은 '갭투자'라는 멋스러운 단어로 포장된다. 빌라왕 사건은 이 속성이 악랄해진 것에 불과하다.
만약 갭투자가 만연해도, 깡통전세가 즐비해도,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괜찮은 것일까? 절대 아니다. 갭투자는 ‘반드시 집값이 올라야지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 전제는 집값이 오르지 않을 때 세입자에게 큰 문제가 닥친다는 결함도 있지만, 세입자가 안심할 수 있을 만큼의 집값이 오를 때의 사회적 부작용이 더 무시무시하다. 아파트가 비싸니 빌라로 가겠다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빌라는 저렴한가? 영화 <싱크홀>에서 그렇게 무시당하는 빌라가 무려 3억 8천만 원이다. 주인공은 2억을 대출받아 내 집 장만을 한다. 아파트를 왜 안 샀을까? 악착같이 1억 8천을 모으고 모으며 기회를 보았을 거다. 하지만 그 동네 같은 평수 아파트 가격은 앞에 1이 더 붙는다. 10억을 대출받으며 내 집 장만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산 격차는 온갖 종류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이 불평등은 사람의 삶을 좌우한다. 집을 구하는 것이 공포가 되면 연애, 결혼, 출산이 망설여지고 성격은 날카로워진다. 삶을 긍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갭투자는 어떤 이유로든 사회적으로 권장될 수 없다. 물론, 한국 사회는 매우 권장한다. 이 순간에도 포털 사이트 몇 번만 검색하다 보면 연예인 아무개의 재테크 비법이라면서 갭투자가 친절하고 긍정적으로 소개된다. 얼마로 건물을 구입해 얼마로 팔았다는 기사는 차고 넘친다.
같은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인생 설교는 얼마나 많은가. 그런 방법으로 돈이 많은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부러움을 받는 수준을 넘어 현자처럼 활동한다면 어딘가 이상하다. 지금은,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자기계발서의 저자가 되고 동기부여 강사가 된다. 열광하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일 거다. 심지어 공중파 예능에도 ‘사부’랍시고 등장해 ‘1억으로 건물주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그게 여과되지 않는다. 그렇게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게 사회적 귀감이 된다면 우리의 ‘사회’는 너무 가볍지 아니한가.
집이 없는 사람들의 목돈을 이용하는 갭투자를 ‘삶의 지혜’처럼 소개하는 세상에서, ‘갭투자를 이용한 집단 사기극’이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투기꾼 몇몇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갭투자를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로 넘쳐 난다. 사회적 부작용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개인의 자산이 늘었으니 좋은 거라는 반공공적 사고만이 넘쳐난다.
사람은 누구나 주거의 욕망을 지닌다. 이것은 안락하게 거주하고 싶은 마음이지, 그 집을 ‘자가로’ 소유하겠다는 강박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미래에 반드시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자가 아파트’를 뜻하는 것도 아닐 거다. 하지만 한국에선 여러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부동산 투기를 순수한 욕망, 어쩔 수 없는 본성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집값 올랐다고 사람이 으쓱해지고, 그런 사람 보면서 자책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 자연스러움이 어색해질 때, 갭투자도 당연해지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눈물 흘리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 이 글은 <SRT 메거진 2023년 2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수정 및 추가했습니다.
부동산 투기로 인해 집값이 높아지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주거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정신적인 고통과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장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을 사는 것은 인생의 큰 결정이지만,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며 부동산 투기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러움을 받는 수준을 넘어 현자처럼 활동한다면 어딘가 이상하다"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갭투자를 통해 빠른 성공을 이루려는 관념은 성실성도, 도전 정신과도 다른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식 열풍과는 구분되는 측면이 있죠. 차라리 미국처럼 주거용 부동산 관련 리츠가 발달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본문에서 "사회적 부작용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개인의 자산이 늘었으니 좋은 거라는 반공공적 사고만이 넘쳐난다"는 지적도 인상적입니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고자 하지만 포기하고 마는, 젊은 세대들의 주거난이 떠오릅니다. 주거 영역에서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고 포기하는 것은 결국 더 큰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갭투자도 문제지만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고들 하던데요. 나쁜 임대인으로 등재해서 임대업을 취소시킨다든지 중개를 안해준다던지 대출 자체가 아예 몇 주택 이상이면 안 나온다던지~ 뉴스에서 본듯한데, 그걸 이렇게 사람들이 특히 청년층이 거기에 빠져 낙심 끝에 생을 마감한다는게 너무도 애닯고 안타까워요 ㅠ
글을 읽으며 부동산 투기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러움을 받는 수준을 넘어 현자처럼 활동한다면 어딘가 이상하다"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갭투자를 통해 빠른 성공을 이루려는 관념은 성실성도, 도전 정신과도 다른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식 열풍과는 구분되는 측면이 있죠. 차라리 미국처럼 주거용 부동산 관련 리츠가 발달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본문에서 "사회적 부작용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개인의 자산이 늘었으니 좋은 거라는 반공공적 사고만이 넘쳐난다"는 지적도 인상적입니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고자 하지만 포기하고 마는, 젊은 세대들의 주거난이 떠오릅니다. 주거 영역에서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고 포기하는 것은 결국 더 큰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