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역사책을 찾아서 (13)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3/10/16
모든 위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위서의 특징 중 하나가 비밀리에 전해져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비밀리에 전해져 온 것이 아니라면 왜 우리가 아는 역사와 이렇게 다르냐는 말에 대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라의 박제상(363~419)이 썼다고 하는 <부도지>도 그렇다.
부도지 (한문화멀티미디어, 2002) - 1986년 초판의 개정판
신라 때 쓴 역사책이라니, 엄청난 이야기다. 이 책(원 이름은 <징심록>이다)은 박제상의 후예인 영해 박씨 집안에서 필사하면서 대대로 비밀리에 전했다고 한다. 왜?

고려 태조 왕건은 신하를 보내 부도의 일을 물었으며, 강감찬 장군도 여러차례 영해를 찾아와서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조선 세종은 영해 박씨 종가와 차가의 후예들을 한양으로 불러서 성균관 옆에 살게 했다고 하며, 심지어 훈민정음도 이 책에서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당대의 권력자들이 잘 알고 있던 이 책이 왜 비밀리에 전해져서 21세기가 되어서야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까?

이들의 주장은 영해 박씨 집안이 김시습(1435~1493)과 더불어 세조에게 반기를 들어서 체포령이 내렸고, 그를 피해 은거하게 되었다는 것. <징심록>은 운와 박효손(1428~1495)이 가지고 있던 것을 김시습이 박재익(1895~1961)의 집안에 옮겨주었다고 한다. 박재익은 이 책을 전했다는 인물로 <부도지>에는 '박금'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런 이야기는 <부도지>가 세상에 안 알려진 이유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이상한 핑계일 뿐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세조 이전에는 그 흔적이 어딘가 남아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부도지>의 내용은 그야말로 세상에서 본 적이 없는 참신한 이야기인지라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무슨 엄청난 금기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황당무계한 이야기만 적혀 있는데 어째서 아무도 모른 채 천수 백년을 지내오게 되었다는 것일까?...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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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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