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배려하지 않는 바지 밑단과 우울한 바느질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4/02/14


바지 고르기에 고생이 많은 편이다. 기성복이란 제조사가 ‘이 정도 키면 이 정도 허리와 엉덩이 둘레가 보통이겠지’라고 마음대로 생각해서 양산해 파는 것이니까 그 ‘보통’에서 어긋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가장 잘 맞는 옷을 수선해 입을 수밖에 없는데, 그 와중에 나는 허리부터 밑으로 도무지 평균과 맞는 부분이 없는 터라 가장 큰 부분에 맞춰 바지를 산 다음 나머지를 줄이는 게 아주 일이다. 내가 바지를 잘 사지 않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상당히 크다. 자본주의 시대에 평균을 벗어난 육체로 살면서 눈곱만큼밖에 돈이 되지 않는 일만 골라서 하는 어리석음을 탓해야지 별 수 있나.

내가 바지를 고를 때 문제가 되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허리에 비해 엉덩이와 허벅지 둘레가 크고, 키는 작다는 점이다. 원래도 그랬는데 살도 찌고 자전거도 타면서 더 심해졌다. 그런 탓에 별 생각 없이 허리에 맞는 바지를 사면 엉덩이부터 낄 때가 많다. 허리가 아니라 엉덩이에 맞는 바지를 사서 졸라매야 한다. 다만 이 때도 바지에 따라선 허리가 너무 남아 벨트만으로 조이기엔 추해지기도 한다. 이러면 밑단만 줄이는 게 아니라 허리도 줄여야 하는데, 바지라는 게 허리를 줄여놓으면 밑위가 이상해진다든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거나 어리숙해 보이는 경우도 많아서 허리까지 줄여야 하는 바지는 대체로 포기하기 마련이다. 이 처지의 밝은 면을 보자면, 나는 내가 이미 가진 바지를 한층 더 아끼고 사랑하게 만드는 친환경적 체형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저번 주에는 과감하게 바지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여행에서 찍힌 사진을 보니 약간 슬림한 바지를 입은 꼬락서니가 그렇게 작고 어리석어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키가 커보이려면 약간 슬림한 바지가 좋다는 믿음을 갖고 거의 평생을 살아왔는데, 그건 전신 사진 찍힐 일이 별로 없어서 갖게 된 착각이 분명했다. 아마 그런 믿음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체형을 잃어버린 탓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 이를 보완할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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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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