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이 이승만을 본 시선

이영록
이영록 · Dilettante in life
2023/07/09

  남한 지도자 이승만이 1954년 7월 워싱턴을 방문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만났다. 한국 전쟁으로 인명과 재산을 엄청난 대가로 치르고 휴전이 성립된 지 1년 만이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한반도를 "통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회담 기록을 보자. 

 "이승만은 자기 나라가 긍정적인 조치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엔군이 오래 주둔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를 비아냥거리며 도발했다.

 "사람들이 작금의 영국과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자유롭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인도차이나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이겼잖아요. 베트남은 지금 분할되었습니다. 머잖아 태국이 넘어갈 테고, 그다음 순서는 남아메리카입니다.... 우리가 공산당 세력의 계속된 정복 활동을 잠자코 앉아서 내버려둬야 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국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겁을 내면 민주주의가 패퇴합니다. 세계 평화를 지키려는 당신의 노력 역시 돌연 종말을 고하고 말 것입니다."

  존 포스터 덜레스(John Dulles)가 끼어들어 이승만을 저지했다. 아이젠하워도 그런 이야기쯤은 귀가 닳도록 들은 상태였고, 화를 내며 자신이 믿는 바를 쏘아붙였다. 

 미국은 한 번도 한국을 하찮게 여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가 일부러라도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나도 한마디 해 주지 않을 수 없군요. 전쟁이 나면 그 결과는 참혹할 거요. 핵전쟁이 일어나면 문명이 파괴됩니다. 도시가 파괴되고, 수백만 명이 죽어요. 그런 무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은 감히 엄두도 못 내는 겁니다. 크렘린과 워싱턴이 전쟁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그 결과가 너무나 끔찍해서 생각할 수도 없는 지경이에요. 나로서는 감당이 안 되는 일이오. 물론 우리는 튼튼한 국방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 일이라면 우리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음을 확인해 드리죠. 당신만큼이나 진지합니다. 내가 말하는 종류의 전쟁이 일어난다면 민주주의는 망합니다. 문명은 파괴되고, 살아남은 사람들과 국가는 남은 사람들의 생존이라는 과제 때문에도 강력한 독재자들 아래 신음하게 될 거요. 그런 이유로 우리가 전쟁에 반대하는 거란 말입니다.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이승만의 대꾸는 교활한 데다 음흉하기까지 했다. "세계 전쟁으로 확산시키지 않고도, 한반도를 통일할 계획이 우리에게 있다면요?")

- '수소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the hydrogen bomb)', 리처드 로즈(Richard Rhodes), 정병선 역, 사이언스북스 刊, p.996~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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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이 과가 많고 비판해야 할 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친일'과 '미제의 주구'라는 비난은 정당하지 못하다. 미국인이 보는 이승만의 묘사는 이를 입증해 줄 간접 자료다.
  확실히 비범한 '깡'을 지닌 인물이기는 했다 ㅎㅎ

漁夫

ps. 한반도 정책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권한(또는 자율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줄어 왔다는 것이 유감스럽게도 옳은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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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夫란 nick을 오래 써 온 듣보잡입니다. 직업은 공돌이지만, 인터넷에 적는 글은 직업 얘기가 거의 없고, 그러기도 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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