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서평] 이 희귀한 DNA, 생활과 정책과 건축의 아카이브
2022/08/31
By 권보드래
내가 살았던 집
지구에 착륙한 지 반세기 남짓, 『한국주택 유전자』를 읽고 헤아려 보니 그동안 내가 거친 집은 총 열일곱 곳인가 보다. 3개월 이상 거주 기준, 해외 경험은 제외한 숫자다. 한 곳에서 평균 2-3년을 살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을 멀리 벗어나 보진 못했다. 안암동과 역촌동과 이촌동과 신림동과 봉천동, 인천 백운동과 남양주시 금곡동과 도농동…… 그것이 내가 겪었던 동네의 대강이다.
태어날 당시 살았다는 안암동 집에 대한 기억은 없다. 언덕 꼭대기 방 두 칸짜리 판잣집이었단다. 수도 시설이 없어 옆집 신세를 져야 했는데, 고지대라 밤에만 물이 나왔기에 신혼의 어머니가 밤새 물을 받곤 했다고. 기억에 생생한 것은 역촌동에 지었던 집부터다. 조부모와 삼촌들과 식모 언니까지 총 열 명이 살았던 네 칸짜리 집. 요강과 재래식 화장실과 연탄광과 장독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집이다.
개발 지구였던 역촌동을 떠난 후에는 거의 아파트에 살았다. 교사였던 어머니가 이촌동으로 전근했을 때부터다. 한참 ‘땅집’을 찾았으나 이촌동엔 아파트밖에 없었더라나. 『한국주택 유전자』의 설명에 의하면 1970년대 초 정책적으로 추진된 ‘중산층 아파트’는 초기에는 주로 한강변 매립지에 건설됐다고 한다. 이촌동과 여의도·반포 등이 그렇게 해서 일찍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했다. 지금의 강남, 당시 ‘남서울’이나 ‘영동’이라 불렸던 한강 남쪽 벌판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건 몇 년 후다.
방대한 주거사·건축사·정책사, 또는 벽돌의 무게
박철수의 『한국주택 유전자 1: 20세기 한국인은 어떤 집을 짓고 살았을까?』와 『한국주택 유전자 2: 아파트는 어떻게 절대 우세종이 되었을까?』를 읽으면 누구나 자신과 가족(집단)의 살림을 돌이키게 될 것이다. 딱 나 같은 독자가, 개발 시대에 서울에서 태어나 중산층으로 성장한 사람이 이 책의 세부를 제일 실감 나게 받아들이겠지만, 그 밖의 누구라도 이 책에서 자기 생애에 가까이 닿아 있는 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직접 살았던 집, 친구나 친척이 지내던 집, 등하굣길 훔쳐보던 주택과 신문에서 요란하게 보도해 대던 아파트.
이 책은 주거의 역사이자 건축의 역사이자 정책의 역사다. 아마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축적된 한국 근현대 주거 공간 연구가 이 책의 중요한 뿌리일 것이다. 그동안 『아파트 공화국: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발레리 줄레조), 『콘크리트 유토피아』(박해천), 『아파트에 미치다: 현대 한국의 주거사회학』(전상인) 등 사회·문화적 시선으로 아파트를 조명한 책이 잇따라 화제가 됐고, 최근에는 『경성의 주택지: 인구폭증시대 경성의 주택지 개발』(이경아)이나 『경성의 아ㅅㅂㅏ트』(박철수 외) 등 식민지기 주택(정책)사를 조밀하게 살펴본 책도 나왔다. 『한국 주거의 사회사』(전남일·손세관·양세화·홍형옥), 『한국 주거의 미시사』(전남일 외), 『한국 주거의 공간사』(전남일) 3부작도 빠뜨릴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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