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살아 있다 - 글쓰기와 질료의 관계

천세진
천세진 인증된 계정 · 문화비평가, 시인
2024/04/19
출처-픽사베이
    유대계였기 때문에 1942년 게슈타포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지만 폴란드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브루노 슐츠(1892∼1942)는 자전적 소설 『계피색 가게들』에서 “죽은 질료”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죽은 질료는 없다. 움직이지 않는 질료가 있을 뿐이다. 설령 죽은 질료가 존재한다 해도 그 사실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글은 탄생하지 못한다. 글은 질료들의 이름과 내용으로 한 세계를 이루는 것인데, 죽은 질료는 글 속으로 옮겨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옮겨올 수는 있다. 그 글은 관과 해골의 나열이 될 텐데 그것도 글이라면 글일 수는 있다. 누가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글의 재료가 되는 것들이나 이야기의 구성요소가 되는 것들을 과거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죽은 질료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으로는 어떤 형식의 글도 쓸 수 없다. 
   
    모든 것은 과거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고, 가져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질료는 죽은 것일 수가 없다. 위대한 작가들이라 해도 미래에서 질료를 가져오지 않는다. 과거에서 가져다가 상상을 조금 곁들여 변형하는 것일 뿐이다. SF소설 중에 과거에서 가져오지 않은 질료가 등장하는 소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천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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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순간의 젤리>(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풍경도둑>(2020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장편소설<이야기꾼 미로>, 문화비평서<어제를 표절했다-스타일 탄생의 비밀>, 광주가톨릭평화방송 <천세진 시인의 인문학 산책>, 일간지 칼럼 필진(200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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