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살아 있다 - 글쓰기와 질료의 관계
2024/04/19
그의 말에 동의한다. 죽은 질료는 없다. 움직이지 않는 질료가 있을 뿐이다. 설령 죽은 질료가 존재한다 해도 그 사실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글은 탄생하지 못한다. 글은 질료들의 이름과 내용으로 한 세계를 이루는 것인데, 죽은 질료는 글 속으로 옮겨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옮겨올 수는 있다. 그 글은 관과 해골의 나열이 될 텐데 그것도 글이라면 글일 수는 있다. 누가 읽을지는 알 수 없지만.
글의 재료가 되는 것들이나 이야기의 구성요소가 되는 것들을 과거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죽은 질료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으로는 어떤 형식의 글도 쓸 수 없다.
모든 것은 과거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고, 가져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질료는 죽은 것일 수가 없다. 위대한 작가들이라 해도 미래에서 질료를 가져오지 않는다. 과거에서 가져다가 상상을 조금 곁들여 변형하는 것일 뿐이다. SF소설 중에 과거에서 가져오지 않은 질료가 등장하는 소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kyoheeo
시간을 해석하는 일이 참 어려워요. ^^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생의 해석도 달라지는 일이니까요. 조르주 페렉의 <보통 이하의 것들>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시간에 대응하는 자세 하나를 힌트로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토요일에 잠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현재'라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 명징한 울림을 주는 글, 감사합니다~
제게는 글쓰기와 시간의 관계로 읽혔어요. 앞서 쓰신 글, 가시와 비가시의 경계에서 무엇을 포착해야 하는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구요^^
그저 시간도 소비재로 써버린 나태를 반성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현재'라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 명징한 울림을 주는 글, 감사합니다~
제게는 글쓰기와 시간의 관계로 읽혔어요. 앞서 쓰신 글, 가시와 비가시의 경계에서 무엇을 포착해야 하는지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구요^^
그저 시간도 소비재로 써버린 나태를 반성하게 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