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역사책을 찾아서 (15) - 단기고사
2023/12/31
<단기고사(檀奇古史)>라는 책이 있다. 스스로 밝히기는 그 내력이 이러하다.
당나라의 소정방과 설인귀가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책을 모두 불태웠는데 그때 <단기고사>도 불타서 없어졌다.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동생 반안군왕 대야발(大野勃)이 대조영의 명에 따라 13년에 걸쳐 새로 <단기고사>를 저술했다. 이를 위해 돌궐국을 두 번 들어가고 석실에 숨겨진 책과 옛날 비석과 흩어진 책들을 수집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단기고사>는 천통 31년에 지었다고 나오는데, 천통은 대조영의 연호이고, 대조영은 21년간 재위에 있었다. 죽은 지 10년이 지나서 나온 책인데 연호는 대조영의 연호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 왜 하필 천통 31년이라고 했을까? 13년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증은 조준희의 논문 참고.)
13년 전인 천통 17년에 <삼일신고>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주장 역시 <삼일신고>가 스스로 하는 것으로, <삼일신고>도 현대에 만들어진 위서다.) <단기고사>에는 <삼일신고>에서 베껴 쓴 글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삼일신고>보다 오래 된 책으로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 위작의 근거를 남기게 된 셈이다.
아무튼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는 백여 년 후에 발해의 문인 황조복(皇祚福)이 다시 펴냈으며 장상걸(張上傑)이 주석을 달았다(판본에 따라서는 대야발이 발해 글자로 썼는데 황조복이 한문본을 낸 거라고 주장한다). 황조복이 다시 발간한 책을 구한말 선비 유응두가 중국의 한 서점에서 구해서 가져와 제자 용암 이윤규(1865~1926)에게 수십 권을 베껴쓰게 했다. 이윤규는 이것을 학부(지금의 교육부) 편집국장 이경직에게 가져가서 보여주었고 이경직이 이것을 발간하려 하였으나 못하고 말았다. 또한 이경직에게는 중국인 왕상춘이라는 사람이 앞뒷장이 떨어진 책을 가져온 적이 있는데 이때 <단기고사...
당나라의 소정방과 설인귀가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책을 모두 불태웠는데 그때 <단기고사>도 불타서 없어졌다.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동생 반안군왕 대야발(大野勃)이 대조영의 명에 따라 13년에 걸쳐 새로 <단기고사>를 저술했다. 이를 위해 돌궐국을 두 번 들어가고 석실에 숨겨진 책과 옛날 비석과 흩어진 책들을 수집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단기고사>는 천통 31년에 지었다고 나오는데, 천통은 대조영의 연호이고, 대조영은 21년간 재위에 있었다. 죽은 지 10년이 지나서 나온 책인데 연호는 대조영의 연호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 왜 하필 천통 31년이라고 했을까? 13년 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증은 조준희의 논문 참고.)
13년 전인 천통 17년에 <삼일신고>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주장 역시 <삼일신고>가 스스로 하는 것으로, <삼일신고>도 현대에 만들어진 위서다.) <단기고사>에는 <삼일신고>에서 베껴 쓴 글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삼일신고>보다 오래 된 책으로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 위작의 근거를 남기게 된 셈이다.
아무튼 대야발이 쓴 <단기고사>는 백여 년 후에 발해의 문인 황조복(皇祚福)이 다시 펴냈으며 장상걸(張上傑)이 주석을 달았다(판본에 따라서는 대야발이 발해 글자로 썼는데 황조복이 한문본을 낸 거라고 주장한다). 황조복이 다시 발간한 책을 구한말 선비 유응두가 중국의 한 서점에서 구해서 가져와 제자 용암 이윤규(1865~1926)에게 수십 권을 베껴쓰게 했다. 이윤규는 이것을 학부(지금의 교육부) 편집국장 이경직에게 가져가서 보여주었고 이경직이 이것을 발간하려 하였으나 못하고 말았다. 또한 이경직에게는 중국인 왕상춘이라는 사람이 앞뒷장이 떨어진 책을 가져온 적이 있는데 이때 <단기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