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무술은 대련이 끝난 후 시작된다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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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무술은 대련이 끝난 후 시작된다. 이 말은 큰 감동을 줬다. 중국의 협은 무술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말도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중국의 무술은 사람을 모으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그 무술의 본, 품새, 형은 군대 제식이나 체조에 가깝다는 것이다. 중국무술에 대한 이러한 가차없는 비하에 가까운 묘사는 아마 중국인이라면 결코 하지 못할, 외부자의 뛰어난 탁견일 것이다. 리링은 손자를 다룬 자신의 책 제목을 이소룡의 말을 빌려서 "유일한 규칙(은 규칙이 없다는 것)" 혹은 "병불염사(병법은 속임수를 싫어하지 않는다)"라고 지었는데, 이는 고상하고 우아한 표현이지만, '중국의 무술은 대련이 끝난 후 시작된다'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종이 위에서 병법을 논한 사람들은 많지만, 병법이 현실에서 하나의 문화가 된 곳은 중국이다. 종이 위에서 독자가 받는 충격은 '문화 충격'에는 비할 수 없다. 병불염사를 상식처럼 대수롭지 않게 이해하는 사람도, 대련에서 이긴 자를 습격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모여드는 중국인들의 모습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련은 왜 하는 것인가? 그렇게 질문한다면 당신은 스스로 중국의 평면적 지혜를 이해하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당신은 그 따위 대련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때 당신은 대련에는 없는 의미가 대련 바깥 어딘가에는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것이 중국인과 당신의 차이점일텐데, 중국인에게 의미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대련도 의미가 없고, 대련 바깥의 실전도 의미가 없다. 반대로 대련도 권모술수이며 대련 바깥의 실전도 권모술수인 것이다. 대회장을 설치하고 관중들을 도열시키고 흥행이 왔다갔다하는 대련에 왜 의미가 없겠는가? 대련은 강자를 가려내는 연극무대이며 강함이란 이러저러한 것이고, 사람들은 그에 합당하다고 道義적으로 합의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념과 실천이 부합하고 명실이 상부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승자는 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