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민주주의, 그래도 민주주의

정재웅
정재웅 인증된 계정 · 금융공학 박사, 변절 빌런
2023/01/30
5. 그래봤자 민주주의, 그래도 민주주의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 <미생>을 보면,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해서 일을 하는 장그래가 선배인 김대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이런 말을 한다 :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저 말은 원래 조치훈 9단이 저 유명한 휠체어 대국*을 마친 후, 언론사 기자가 "왜 그렇게 치열하게 바둑을 두십니까?"라고 질문하자 답한 내용이다. 미생에 이어지는 말은 다음과 같다 : "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거 ... 그래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 없는 바둑. 그래도 바둑. 세상과 상관없이 그래도 나에겐 전부인 바둑. 그래도 바둑. 내 바둑이니까, 내 세상이니까."
조치훈 9단과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기성 타이틀을 놓고 격돌한 1986년 기성전 대국 장면. 오른쪽 휠체어에 타고 바둑을 두는 사람이 조치훈 9단이다. 이 장면은 만화 <미생>에도 똑같이 재현되어 있다. 사진 출처: 나무위키

(*주 : 휠체어 대국은 1986년 조치훈 9단에게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도전한 기성전 대국을 말한다. 제1국이 벌어지기 며칠 전, 조치훈 9단은 큰 자동차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는다. 말 그대로 '생각을 하는 머리와 바둑을 두는 오른 손'만 제외하고 모두 다친 상태였는데, 이런 상태에도 불구하고 조치훈 9단은 평소 지론인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를 지키기 위해 기성전에 임했다. 결과적으로 조치훈 9단은 2승 4패로 고바야시 고이치 9단에게 기성전 타이틀을 내주었지만, 정작 당시 언론에 회자된 것은 승자인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아니라 패자인 조치훈 9단의 이러한 치열한 태도였다.)

조치훈 9단의 저 말로 글의 서두를 시작한 이유는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많은 결함과 문제를 갖고 있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는 제헌헌법부터 현행 제9차 개정 헌법까지 수없이 많은 한국인의 피와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탄생해서 이어져 왔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힘든 신생 독립국에서...
정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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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한국 경제성장에 있어 정부 정책이 금융시장 발전에 끼친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가상자산 스타트업을 거쳐 금융시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저서로 "변절 빌런의 암호화폐 경제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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