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을 가장한 삶의 조각들

뉴필로소퍼
뉴필로소퍼 인증된 계정 · 일상을 철학하다
2022/12/22

모든 걸 계획해두었다는 착각

“우리는 어떤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일은 가치 있다. 
우리는 주로 오류를 찾는 일로 진리를 추구한다.
그래야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다.”
_카를 포퍼

‘생존 가방’ 사진이 SNS 상에서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생존 가방이란 물, 붕대, 신호탄, 방독면 등 비상 상황에 필요한 물품들로 채운 배낭이나 더플백을 가리킨다. 홍수나 산불이 잦은 곳에 사는 사람이나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놓인 사람에게 생존 가방은 꽤 든든한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생존 가방은 실은 생존주의자들의 억센 자기 신뢰 판타지를 반영한 것일 뿐 실제 비상 상황에 유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짜 생존 가방이 필요한 순간은 좀비떼에게 공격당하거나 갑자기 사회가 붕괴했을 때가 아니라, 부모님이 낯선 도시에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가 걸려 올 때이니까.
출처: Shutterstock
생존 가방에는 자기강화self-aggrandisement 요소가 확실히 엿보인다.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삶을 순식간에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사건을 미리 내다볼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숲속으로 피신해 자신의 지혜에 기대 살아가거나 물자를 비축해둔 지하 벙커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주체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다. 지금 모습 그대로 갑자기 달라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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