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 교직생활] 12장. 누가 월급 주는지 알고

류재연
류재연 인증된 계정 · 정교사, 기간제 교사, 그 후 교수
2024/04/10
내가 교사 생활을 한 90년대에는 소위 특수교사에게 갑질하는 학부모가 거의 없었다. 내 경험에는 그렇다. 살짝 그 느낌이 있는 분이 있기도 했다. 남편이 안기부 고위 간부였는데 내가 교사로 임용되기 얼마 전에 사망하였다. 그분 아들은 내가 발령받기 전부터 장기 결석했다. 나는 구태여 그분에게 전화하여 학생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학부모가 학생을 장기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학교에 먼저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무슨 권위주의에 빠져서가 아니라, 그때까지의 내 생각은 그랬다. 장기 결석 학부모에게 먼저 전화해서 내가 누구라고 설명하는 것은, 마치 군대에서 신입 신고를 하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싫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 학부모는 신학기가 시작되고 몇 달이 지나서 자녀를 등교시켰다. 내가 전화하지 않은 것에 섭섭함을 표했지만, 나는 마음에 담지 않았다. 내가 엄청나게 경우 없는 짓을 한 것 같지 않았다. 그분도 그리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피장파장이었다.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사과를 원하는 눈치였다. 아마 내가 그녀와 구면이었다면 형식적으로라도 죄송하다고 분위기 좋게 넘겼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의 섭섭함은 자기 자녀에 대한 내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학교에 대한 자기 남편의 살아생전 헌신과 희생을 주야장천 늘어놨다. 만일 자녀에 관해 관심이 컸다면, 생판 처음 보는 나에게 남편의 과거 업적보다는, 자녀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중심으로 대화했을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원한 것은, 자기가 아직도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초임 교사였기 때문에, 사정을 몰라서, 과거 영향력이 컸던 학부모의 은근한 요구를 나는 잘...
류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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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학생들과 생활하다 교수가 되었어요. 교사 시절 급훈은 '웃자'와 '여유'. 20년 교수 생활 내내 학내 부조리와 싸우다 5년간 부당 해고, 파면, 해임되었다 복직 되었어요. 덕분에 정신과 치료, 교권 확립, 학교 상대 나홀로 소송의 노하우를 선물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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