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 역전될 때 사랑의 풍경은? ㅡ마틴에덴 1

오아영
오아영 인증된 계정 · 갤러리 대표, 전시기획자, 예술감상자
2023/04/24
영화 마틴 에덴 포스터
=사랑, 나를 떠나 너에게로 가는 여정


나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명백히 내가 역겨워하는 어떤 지점들을 갖고 있을 때, 그의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내게 참을 수 없는 혐오를 유발할 때. 나는 종종 안도하곤 했다. 확신하면서. “내가 그를 사랑할 일은 결코 없어.” 
그렇게 여러모로 너무도 나와는 명백히 아닌, 그런 남자를 그럼에도 계속 만날 때가 있지. 영 아니긴 한데 뭐, 만나자니까. 자꾸 만나자니까. 간청하니까. 만나는 것 만으로도 좋다니까. 이 남자 되게 별로인데 어차피 나는 마음 줄 일 없으니까. 그렇게 나를 믿으면서. 안전핀을 확인하고. 합리화하면서. 미안하지만 마음을 주지 않을거라 확신하면서도 그를 만나주는 건 어떤 즐거움 때문일까. 그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사랑을 간청하는 당신에게 절대 마음을 주지 않을 나를 확신해서 너를 가여워하면서도 희망고문하는 그 자리. 나는 너와 사랑에 빠지면 안되는 이유를 스스로 새기고 또 새겼었어. 사실 이건 합리화였는지도 몰라. 그 수많은 문제에도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내가 스스로에게 도무지 납득시킬 수 없었을 적에. 그치만 그가 보고 싶어서. 그렇게 나는 이 남자에게 절대 빠지지 않을 것임을 나자신에게 얼마나 논리적으로 정교하게 설득하고 확인했었는지. 이렇게 그와의 만남을 합리화하다가 나는 어느순간 그와 연인이 되곤 했었다고. 그가 얼마나 내 타입이 아닌지 그가 얼마나 무식한지를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안심시켰던 그 자리들은 어찌나 바보같은지. 이미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실은. 

그렇게 끝이 보이는 사랑 속에 다 알면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내 모습을, 나는 전혀 예상치못한 책 속에서 만났다. 
한 발만 살짝 담그고 좀 놀아보려고 했건만 온몸이 빠져버린 그 자리. 그렇게 부잣집 아가씨가 가난뱅이 남자와 어쩔수없이 사랑에 빠진 이야기.



#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을 안 읽은...
오아영
오아영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사랑과 아름다움. 이 둘만이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이유이자 내용이자 목적이다. 실은 이들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살게 만드는 절대적인 두가지라 믿는다. 인간은 제 영혼 한 켠에 고귀한 자리를 품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또한 믿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보이지 않는 자리들을 손에 만져지도록 구체적으로 탁월하게 설명해내는 일로 내 남은 삶은 살아질 예정이다. 부디 나의 이 삶이 어떤 경로로든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게 만들 수 있다면. 제발.
22
팔로워 680
팔로잉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