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 난은 특히 고아한 향기와 단아한 자태 때문에 문인들의 사랑을 받고 문인화 소재로서 매난국죽 사군자의 반열에 올랐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이 묵란을 잘 치기로 이름을 얻었다.
1866년(고종3년) 흥선대원군은 아들 고종이 보위에 오르면서 아버지로서 실권을 누린다. 사진은 개인 소장 10폭 병풍의 일부다. 석파 이하응이 지난날 어려웠던 시절 은인에게 묵난을 쳐 답례를 한 그림이다. (세검정 가는 길의) 삼계산방三溪山房에서 그린다고 썼다. 묵의 짙고 옅음의 농담濃淡 정도가 세 가지 이상은 된다. 고수의 묵화법이다. 하수는 잘해야 두 가지다.
농담 정도가 다양할수록 솜씨가 있다고 서예가 지인이 일러줬다. 어느 나이 어...
농담 정도가 다양할수록 솜씨가 있다고 서예가 지인이 일러줬다. 어느 나이 어...
@노영식 님~안녕하세요^^
역시 고수가 그린 묵란이 저도 한번 그려보고 싶을 정도로 멋지네요.
수중한 이어쓰기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노영식 님~안녕하세요^^
역시 고수가 그린 묵란이 저도 한번 그려보고 싶을 정도로 멋지네요.
수중한 이어쓰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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