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권력이 저지른 가장 대담한 부정 - 3.15 부정선거(1960)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3/03/13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가장 저열하고 치졸했던 부정선거 
   
제5대 부통령 선거는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실시됐다.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투표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신병 치료차 방문했던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바람에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 하나만 남아 있었다. 당시 선거법에 의해 단독후보는 유효투표 수의 1/3만 얻으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당인 자유당은 차기 대통령도 따 놓은 당상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부통령 선거였다. 지난 선거에서 민주당 장면에게 부통령 자리를 빼앗겨 일격을 당했고, 이번 선거 판세도 그다지 전망이 밝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무리한 4선 시도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점점 늘어났고, 갑작스럽게 대통령 후보를 잃은 야당도 부통령 선거에 총공세를 펼치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왼쪽)과 이기붕. 출처-대한늬우스 자료화면
   
팔순이 훌쩍 넘은 이승만의 노욕과 측근 권력자들의 횡포와 축재에 화가 난 국민들은 딱한 처지가 된 야권에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이승만 정권은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기획한다. 내무부장관 최인규가 앞장서 부정선거를 진두지휘했다. 관을 동원해 주민들을 압력하고 회유하는 작전을 펼치는 동시에, 투개표 당일에 감행할 조직적인 개입도 미리 준비했다. 
   
선거시작 전부터 전국의 시장과 군수는 물론 경찰서장들에게 사직서를 미리 받아두고, 자유당이 지면 모두 사표를 수리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배수의 진을 치고 부정선거에 임하라는 명령이자 각오였다. 학교와 군부대, 경찰 등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여당 몰표를 기획했다. 부정선거가 발각되면 책임은 자기가 질 테니, 걱정 말고 부정행위에 가담하라고 다그쳤다. 최인규는 이기붕 다음으로 ...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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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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