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유사 홍위병들에 대하여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1/31
홍위병은 중국에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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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문화혁명의 광풍이 중국 대륙을 덮친 3년째 되는 해였다. 홍위병들의 준동을 이용해 정권을 공고히 한 모택동이지만 홍위병들이 대체 어디까지 갈지 걱정스러웠다. 각 대학 홍위병들끼리 총기 만들고 장갑차 몰고 전투를 벌일 지경이었고 서로를 반동분자라 물어뜯는 가운데 모택동의 아버지가 부농(富農)이었다는 대자보가 나붙는 판이었다. 자칫하면 모택동이 ‘봉건의 자식’ 낙인을 받을 수도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열렬한 자칭 ‘문파’들이 이재명 밉다고 윤석열한테 붙었던 상황을 뉘 상상했으리오) 이에 모택동은 7월 28일 홍위병 지도부(?)들을 불러 운동의 정지를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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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농민, 그리고 전사와 민중이 너희들을 지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다수의 학생도 좋아하지 않고 원래 너희들을 옹호하던 사람들까지도 고개를 젓는다. 너희들은 단절되었다. 무력 폭력 투쟁을 멈추고 말과 글을 가지고 논쟁하라.” 이런 모택동의 말을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홍위병들의 기를 죽인 것이 모택동의 말에 죽고 산다 할 ‘모택동 사상 선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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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이 모택동 사상 선전대에 특별한 선물이 내려졌다. 8월 4일 방문한 파키스탄 외무 장관이 망고 40개를 선물한 것이다. 망고가 요즘 같이 흔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자애로운 인민의 수령 모택동은 이 귀한 과일을 모택동 사상 선전대에 ‘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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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일보
모택동이 내린 40개의 망고는 일종의 성물(聖物)이 된다. 이 과일을 하사받은 선전대는 우리만 이 모택동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하여 북경 시내 공장들에게 나눴다. 아무리 모택동인들 40개의 망고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온 안이 밀랍으로 망고 모형을 만들어 보내는 것이었다. 원래 모형 과일이 더 탐스럽고 만나 보이는 법, 전국의 모택동 선전대는 북경에서 보낸 망고 모형 앞에서 열광해 날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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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상해는 중...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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