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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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에서

"회사에 찾아올까 봐 직장을 관뒀어요"

22일 서울 지하철 신당역 10번 출구 추모 공간에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예방할 수 있었던 폭력! 서울교통공사가 책임져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출처: alookso
슬기 씨(가명)는 30대 여성이다. 그는 오늘 연차를 냈다. 가전제품 수리 기사를 불렀다. 수리 기사는 점심쯤 도착한다. ‘그전에 다녀와야지’. 슬기 씨는 신당역으로 출발했다.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앞 추모 공간에 도착했다. 그동안 겁이 나서 오지 못했던 곳이다. 신당역은 출근 시간대가 끝나 한산했다. 사건이 벌어진 여자 화장실은 지금 이용할 수 있다. 다시 일상 공간으로 회복된 모습에서, 슬기 씨는 이질감을 느꼈다. 9월 22일, 불꽃이 신당역에서 만난 추모자다.

추모사가 빼곡히 붙어있는 추모의 벽 앞에 슬기 씨가 홀로 서 있다. 노란 포스트잇에 꾹꾹 눌러 적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서울교통공사, 다른 회사들도 다 개인정보 관리 똑바로 하라.” 포스트잇을 붙이고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추적단불꽃 단으로 활동하는 원은지 alookso 에디터입니다. 잠시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슬기 씨는 나연 씨(가명)처럼(<”나는 스토킹 피해자입니다”> 참고) 신당역 근처에 산다. 신당역이 이렇게 큰 역이었나 새삼 놀랐다. 매일 지나가던 역인데 낯설게 느껴졌다. 또래 여성이 살해됐다는 감각 때문일까.

슬기 씨는 1년 넘게 항우울제를 복용했었다. 약 복용을 중단한 건 최근이다. 2년 전 직장에서 일로 만난 거래처 남성이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6개월 동안 슬기 씨를 살해 협박했다. 그때 기억이 신당역에서 다시 재생됐다. “피해자가 고소한 후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충격적이에요. 너무 슬픕니다… 저도 ‘협박죄’로 누군가를 고소한 적이 있어요. 고소한 후에 보복이 무서웠어요. 제 주소나 근무지가 알려지는 게 싫어서 직장을 그만뒀어요. 그런데 그분은(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이런 일을 당하셔서…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고통스러운 기억을, 슬기 씨는 천천히 씹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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