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의 전성시대 – 식모와 여공에서 버스걸과 창녀까지

강부원
강부원 인증된 계정 · 잡식성 인문학자
2022/12/02

호스티스 영화의 범람

1970년대 한국 영화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호스티스’ 물의 범람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아 생소할 수도 있는 단어 ‘호스티스(Hostess)’는 손님을 시중들거나 접대하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7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원뜻에서 변형돼 술집에서 일하거나 윤락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많이 쓰였다. 프랑스어 ‘마담(madame)’이나 우리말 ‘아가씨’처럼 원래 의미보다 특정한 뉘앙스를 연상시키는 맥락으로 사용되다 보니, 일상에서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 됐다.

이상스럽게도 1970년대 한국 영화에서는 가난한 여성, 못 배운 여성, 가정과 일터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에 대한 재현이 주를 이뤘다. 하층계급 여성의 수난사 혹은 사회적 지위의 차이 때문에 이뤄질 수 없었던 여성의 실패한 사랑 이야기가 관객들의 인기를 끌었다. 영화 속 여성 주인공들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안간힘을 쓰고 잘 살아보려 했으나, 이들은 하나같이 모진 삶을 살다가 끝내 남자에게 버림받고 자살하거나 병을 얻어 죽고 만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개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어린 여자인 경우가 많았다. 저학력 비숙련의 젊은 여성들이 도시에서 처음 구한 직업은 식모 혹은 버스 차장 같은 것이었다. 물론 여공이 돼 공장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 열악한 처우를 받는 일자리였지만 이런 기회라도 빨리 얻으려면 뒷돈을 쓰거나 월급 몇 개월 치를 받지 않는 조건을 내걸지 않으면 안됐다. 엄청나게 많은 인력들이 농촌에서 쏟아져 나와 서울과 인천 등지로 계속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적게 줘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이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세상살이의 혹독함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아등바등 살아보려 몸부림치지만 나아지는 게 별로 없다. 빚에 허덕이다 나쁜 사람들의 꾐에 빠져 몸을 버리거나, 다방이나 술집으로 팔려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몸 주고 마음 줬던”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는 일도 흔했다. 그 와중에 일터에서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되거나, 시련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치병에 걸려 객사하는 결말도 낯설지 않다.

호스티스 영화는 가혹한 세상사에 치여 점차 몰락하게 되는 여성이 잠시 거쳐 가는 특정 직업에만 주목해 이름을 붙인 장르 구분법이나 마찬가지다. 1970년대 유행한 호스티스 영화란 실상 ‘하층계급 여성들이 경험했던 보편적인 수난서사’이자 ‘여성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좌절서사’라 보는 편이 더 타당하겠다.

그렇다면 당대 호스티스 영화를 제작했던 수많은 남성 작가와 영화감독들은 어떤 이유로 여성의 수난과 고통을 표나게 강조한 것일까? 1970년대 남성 지식인들은 왜 그렇게 여성의 정신과 신체를 편집증적으로 훼손하려했던 것일까? 가난하고 못 배운 여성이 남성에게 구원받을 뻔하다가 끝내 버림받는 장면을 통해 당시 관객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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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과 오래된 잡지 읽기를 즐기며, 책과 영상을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문학자입니다.학교와 광장을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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