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공존할 수 있을까?

콩사탕나무
콩사탕나무 ·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
2022/12/17

도로에서 만난 고라니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고, 연말 회식이라 늦는다는 남편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씻고 나와 몰려오는 졸음을 떨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대로 잘까 하다 보통 추위가 아닌데 눈길에 걸어올 남편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IN SEOUL에 집이 없으면 출퇴근길이 고달픈 현실이다. 가끔 ‘나의 해방일지’에 나온 삼 남매가 사는 산포시 같은 느낌이 든다. 

도착시간을 물어 역까지 차를 몰고 나갔다. 밤 사이 기온이 떨어지자 남아있던 눈은 차갑게 얼어붙어 바스락 소리를 낸다. 커브를 틀 때 바퀴가 미끄러지는 느낌이 났다. 식은땀이 났다. 

남편을 태워 집으로 오는 길, 자정이 다가오는 늦은 밤 시골 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집으로 가는 도로는 몇 달 전 새로 개통된 국도이다. 몇 년에 걸쳐 산을 깎고, 강을 메워 만들어낸 위대한 인간의 작품이다. 우리 차밖에 없는 듯하여 답답한 시야를 해소하기 위해 상향등을 켰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도로가 밝아지며 바로 앞에 차가 아닌 것이 보였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했다. 급 브레이크를 밟았다. 
얼큰하게 취해있던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한다. 

“악!!!! 뭐야? 사슴? 고라니?”

고라니였다. 
다행히 맞은편에서 뛰어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진행 중인 고라니의 엉덩이가 보였다. 비상등을 켜고 차선을 옮겼다. 놀란 심장은 쿵쿵쿵 방망이질을 하듯 멈출 줄 모른다. 아마 나보다 더 놀란 고라니가 줄행랑을 친다. 자세히 보니 덩치가 아주 작은 어린놈이었다. 
고라니는 도로 위로 몇 미터를 내달리더니 펜스를 넘어 사라졌다. 캠핑 중 밤에 고함 소리 같은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들은 적은 있지만 실제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뒷모습만 보았지만 사슴 같았다. 

고라니를 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만약에 치었다면 고라니 목숨을 빼앗은 것은 물론이고 차도 망가졌을 테고, 나의 정신은 한겨울 얼음조각이 부서지듯 바사삭 무너졌을 것이다.
실제로 자주 고라니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고 인명 피해까지...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느리지만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2.1K
팔로워 767
팔로잉 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