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9
오늘 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서 제 머릿속을 장악하는 단어는 ‘20대 여자’입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언론은 정치성향이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20대를 주목하면서 그 중에서도 ‘남자’를 먼저 주목합니다. 그 사이 20대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합니다.
이대남 현상이 주목받을 당시, 이대녀가 뚜렷한 정치성향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요. 혹시 이 과정에서 여론을 들여다볼 때 우선 남자의 성향을 먼저 파악하는 관습이 깔린 것은 아닐까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통념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요.
실제 투표율의 경우도 20대 여성은 20대 남성을 앞지른 지 오래입니다. 서울 지역의 여성 투표율은 이미 십 년 전부터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합니다.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여성의 투표율이 더 높은 지역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상 여성 유권자수가 더 많은데다 투표율도 높은 것이죠.
60대 이상에서는 여성 투표율이 남성 투표율보다 낮은 반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언론은 정치성향이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20대를 주목하면서 그 중에서도 ‘남자’를 먼저 주목합니다. 그 사이 20대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합니다.
이대남 현상이 주목받을 당시, 이대녀가 뚜렷한 정치성향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요. 혹시 이 과정에서 여론을 들여다볼 때 우선 남자의 성향을 먼저 파악하는 관습이 깔린 것은 아닐까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통념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요.
실제 투표율의 경우도 20대 여성은 20대 남성을 앞지른 지 오래입니다. 서울 지역의 여성 투표율은 이미 십 년 전부터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합니다.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여성의 투표율이 더 높은 지역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상 여성 유권자수가 더 많은데다 투표율도 높은 것이죠.
60대 이상에서는 여성 투표율이 남성 투표율보다 낮은 반면,...
이번 대선에서 이대녀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녀는 단순히 이대남의 대립항처럼 보입니다. 이대남을 화나게 하는 정책은 고스란히 이대녀 정책이고, 이대녀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어야 이대남들의 표를 얻습니다. 따라서 이대녀는 특별히 새로운 키워드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이대남 키워드를 고스란히 뒤집어 놓았으니까요. 그게 아니라 이대녀가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키워드, 혹은 '더 나은' 공동체적 미래로 향하는 키워드라면 심상정 후보가 마지막까지 악전고투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선거가 끝난 후 여초 커뮤니티에서 심상정 후보를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후원금을 모아 보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였습니다. 언뜻 훈훈한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 굉장히 심각하게 봤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인으로서의 심상정은 만년 낙선자이자 영원한 패배자가 되고 맙니다. 다음번 선거에서도 이대녀들은 똑같이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표 되면 안 되니까 이번에도 찍는 건 민주당에 찍어주고, 내가 진짜로 지지하는 심상정은 후원으로 보답하면 부담없겠다!"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비록 정의당의 통장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인 심상정에게 가장 간절히 필요한 것은, 후보자 심상정이 그렇게 읍소했던 것은 후원금이 아니라 표였을 겁니다. 정치인은 득표수로 말하는 법인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의 존재감과 협상력이 제대로 평가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이제 민주당에서는 심상정을 전혀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하지 않을 것입니다. 뒤늦은 후원은 그 지지자들의 죄책감만 면책하는 라이선스일 뿐입니다.
한쪽에서는 이대남 과몰입을 비판하면서 이대녀가 몰려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선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 정작 그들을 가장 선명하게 대변하고 있는 심상정 후보는 풍전등화 같은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정의당 캠프에서 선거기간 중에 들려오는 소식들은 차라리 애처로울 정도였습니다. 이대녀의 돌풍은 정작 어느 곳보다도 강하게 몰아쳐야 했을 그곳에는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대녀들도 이대남처럼 자기들 나름대로의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진영논리를 부수고서 진보와 인류애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보적 가치에 내심 동일시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사회의 진영논리라는 해묵은 링 위에서 쌈마이하게 싸우는 것에도 매우 익숙한 인구집단이라는 생각입니다. 매스미디어 속 이대남의 문제적 캐리커처가 있듯이, 이대녀의 이상적(?)인 캐리커처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대녀들은 그 캐리커처보다는 훨씬 더 닳고 닳은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대녀들도 자신들이 이대남에 대한 대립항으로서 자주 호명된다는 사실을 아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구태여 심상정 후보가 아닌 이재명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은, '앞으로는 이대녀와 그들의 가치를 대변해야 그들의 표를 얻는다' 보다는 '앞으로는 이대남을 대변하는 진영에 대립각을 세우는 진영에서 이대녀의 표를 얻는다' 는 암시를 더 강하게 풍깁니다. 이번 대선을 이렇게 본다면, 저로서는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반가움은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이대남이라는 젠더이슈를 가지고 선거전략을 짠 국민의 힘과 그걸 받아서 키운 언론에게 1차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새벽 늦도록 이어진 개표방송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는 나는 이제 갓 30대가 된 여성인데 세상의 절반은 나를 그들과 동격의 인격으로 대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걸까?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여성 인권의 격하나 여성 혐오의 표출을 표현하기위하여 그사람을 뽑지는 않았을테고, 각자의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수 있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절벽에 부딪친 파도마냥 마음이 시끄럽고, 또 흩어지는건 내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사는것이 무서워서일 것입니다. 나는 내 두려움을 남녀노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딸과 아들이 있는 엄마입니다
내딸의 목소리가 이대남 못지않게 커지기를
(우리때는 그렇지 못했었던)
엄마의 바람입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정치, 보편 타당한 정책을 기대합니다. 어느 국민도 홀대받는 느낌을 가지지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가 해야할 첫번 째 덕목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정치권이 처음으로 귀 기울인 이번 대선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층으로 퉁쳐지던 20대 여성과 남성의 극명한 정치성향이 이젠 분리돼 다뤄진다는 것도요. 앞으로 이 목소리는 외면할 수 없는 흐름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제 20대 대선도 끝났고, 더 이상은 진보, 보수 애기 없이 모두 잘 살아갈 정책만이 나오는 21대 대선이 되길 바랍니다.
이대녀, 이대남 갈라치기는 정치판의 못된 버릇때문이 아닌지.
20대 여성의 선한 결집력이 결국 '이대남 전략은 실패했다' 라는 말이 나오게 한 것은 너무나도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2030 여성유권자에게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새로운 5년의 첫걸음
더 이상의 정치적인 갈치기보단
향후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야 할
나라의 미래 자산인 세대인데
보다 낳은 방향을 모색하고
상호보완 할수 있도록 부족한 건 채워갈 줄 아는
지혜가 모아야 할 시점 아닐까 합니다.
지혜와 지식의 차이를 크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젊고 머리 좋은 친구가 갈아치기 및 선동 하는 것이
결과를 떠나
참 지혜롭지 못한 결과를 도출해낸 것 같네요
정치는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란 결론
저 역시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에 정치권이 처음으로 귀 기울인 이번 대선이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층으로 퉁쳐지던 20대 여성과 남성의 극명한 정치성향이 이젠 분리돼 다뤄진다는 것도요. 앞으로 이 목소리는 외면할 수 없는 흐름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20대 여성의 선한 결집력이 결국 '이대남 전략은 실패했다' 라는 말이 나오게 한 것은 너무나도 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2030 여성유권자에게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번 대선에서 이대녀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녀는 단순히 이대남의 대립항처럼 보입니다. 이대남을 화나게 하는 정책은 고스란히 이대녀 정책이고, 이대녀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어야 이대남들의 표를 얻습니다. 따라서 이대녀는 특별히 새로운 키워드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이대남 키워드를 고스란히 뒤집어 놓았으니까요. 그게 아니라 이대녀가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키워드, 혹은 '더 나은' 공동체적 미래로 향하는 키워드라면 심상정 후보가 마지막까지 악전고투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선거가 끝난 후 여초 커뮤니티에서 심상정 후보를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후원금을 모아 보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였습니다. 언뜻 훈훈한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 굉장히 심각하게 봤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인으로서의 심상정은 만년 낙선자이자 영원한 패배자가 되고 맙니다. 다음번 선거에서도 이대녀들은 똑같이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표 되면 안 되니까 이번에도 찍는 건 민주당에 찍어주고, 내가 진짜로 지지하는 심상정은 후원으로 보답하면 부담없겠다!"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비록 정의당의 통장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치인 심상정에게 가장 간절히 필요한 것은, 후보자 심상정이 그렇게 읍소했던 것은 후원금이 아니라 표였을 겁니다. 정치인은 득표수로 말하는 법인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의 존재감과 협상력이 제대로 평가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이제 민주당에서는 심상정을 전혀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하지 않을 것입니다. 뒤늦은 후원은 그 지지자들의 죄책감만 면책하는 라이선스일 뿐입니다.
한쪽에서는 이대남 과몰입을 비판하면서 이대녀가 몰려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선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 정작 그들을 가장 선명하게 대변하고 있는 심상정 후보는 풍전등화 같은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정의당 캠프에서 선거기간 중에 들려오는 소식들은 차라리 애처로울 정도였습니다. 이대녀의 돌풍은 정작 어느 곳보다도 강하게 몰아쳐야 했을 그곳에는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대녀들도 이대남처럼 자기들 나름대로의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진영논리를 부수고서 진보와 인류애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보적 가치에 내심 동일시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사회의 진영논리라는 해묵은 링 위에서 쌈마이하게 싸우는 것에도 매우 익숙한 인구집단이라는 생각입니다. 매스미디어 속 이대남의 문제적 캐리커처가 있듯이, 이대녀의 이상적(?)인 캐리커처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대녀들은 그 캐리커처보다는 훨씬 더 닳고 닳은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대녀들도 자신들이 이대남에 대한 대립항으로서 자주 호명된다는 사실을 아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구태여 심상정 후보가 아닌 이재명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은, '앞으로는 이대녀와 그들의 가치를 대변해야 그들의 표를 얻는다' 보다는 '앞으로는 이대남을 대변하는 진영에 대립각을 세우는 진영에서 이대녀의 표를 얻는다' 는 암시를 더 강하게 풍깁니다. 이번 대선을 이렇게 본다면, 저로서는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반가움은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딸과 아들이 있는 엄마입니다
내딸의 목소리가 이대남 못지않게 커지기를
(우리때는 그렇지 못했었던)
엄마의 바람입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정치, 보편 타당한 정책을 기대합니다. 어느 국민도 홀대받는 느낌을 가지지않도록 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가 해야할 첫번 째 덕목인 것 같습니다.
이대남이라는 젠더이슈를 가지고 선거전략을 짠 국민의 힘과 그걸 받아서 키운 언론에게 1차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새벽 늦도록 이어진 개표방송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사는 나는 이제 갓 30대가 된 여성인데 세상의 절반은 나를 그들과 동격의 인격으로 대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걸까?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여성 인권의 격하나 여성 혐오의 표출을 표현하기위하여 그사람을 뽑지는 않았을테고, 각자의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수 있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절벽에 부딪친 파도마냥 마음이 시끄럽고, 또 흩어지는건 내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사는것이 무서워서일 것입니다. 나는 내 두려움을 남녀노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