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통조림에 얽힌 자본주의의 역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4/19
  • 장바티스트 말레  | 언론인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계곡의 한 레스토랑. 박제 곰과 코브라로 장식된 방에서 한 남성이 케첩 병 앞에 놓인 햄버거를 들고 크게 한입 베어 문다.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토마토 가공회사 ‘모닝스타’의 크리스 루퍼 회장이다. 공장만 3개 보유한 모닝스타는 전 세계 토마토 농축물의 12%를 생산하고 있다. 
  • 루퍼 회장은 햄버거를 베어 문 채 말했다.
    “나는 일종의 무정부주의자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는 사장이 없다. 대신 노동자 자주관리 방식을 도입했다.”
     
    여기서 노동자 자주관리란, 컴퓨터가 임직원들을 대체하되 노동자가 기업자본을 통제하지 않는 방식을 일컫는다. 자유당 지지자인 루퍼 회장은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재량껏 업무 부담을 하도록 만들었다.(1) 캘리포니아주 윌리엄스시에 있는 공장에서는 시간 당 1,350톤의 생토마토를 가공해 농축물로 만든다. 세척, 파쇄, 가압식 증발농축 등의 공정은 모두 자동화돼있다. 토마토를 가득 실은 트럭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이곳은 세계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공장이다. 임직원을 포함한 인력 대부분을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한 결과, 70명에 불과한 인원이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 ‘1차 가공’을 마친 토마토는 품질별로 대용량 포장돼 출고된다.
     
    이렇게 출고된 농축토마토는 컨테이너에 실려 전 세계로 유통된다. 이를 소포장해 유럽의 대형 유통기업에 판매하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통조림공장에서도 모닝스타 제품이 중국산 제품 옆에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스칸디나비아, 동유럽, 브리튼 제도, 프로방스 지역의 ‘2차 가공’ 공장들도 모닝스타의 농축토마토를 활용한 제품(냉동피자, 라따뚜이, 라자냐 등)을 생산한다. 농축토마토는 전통요리와 서민요리에 두루두루 사용된다. 붉고 걸쭉한 농축물을 세몰리나(굵은 밀가루) 또는 쌀과 섞으면, 마페(서아프리카식 스튜)부터 파에야나 쇼르바(아랍식 수프)까지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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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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