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풍경

펄케이
펄케이 · 경계에서 연결을 꿈꾸며 쓰는 사람
2023/11/08
대략 20년 전쯤이었던가 아니면 그보다 더 이전인가 정확히 기억조차 안 나는 일이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 초, 혼자서 훌쩍 부산으로 떠난 적이 있다. 갑작스러운 부산행의 이유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같은 동호회의 지역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지만, 진짜 이유는 노래로만 들었던 겨울 바다에 가 보고 싶어서가 더 컸다. 

   꼭 필요한 짐만 간단히 챙긴 배낭 하나를 메고 서울역에서 가장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밤 기차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당시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의 필수품이었던 CD플레이어 안에는 나름대로 조합하여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이 들어 있었다. 캄캄한 어둠을 가르며 기차는 빠른 속도로 달렸고, 귓가에는 기차의 속력과는 대비되는 차분하고 고요한 정서가 가득 담긴 음악들이 흘렀다. 몇 시간 후면 곧 만날 겨울의 풍경들을 기대하며 나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행히도 부산행 기차 안에서 좀비들을 만나지도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말로만 들어본 부산역에 떨어진 시간은 새벽 5시를 막 지났을 때였다. 개찰구를 통과하여 역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아직은 어둠이 남아 있는 하늘을 향해 크게 심호흡하며 생소하고도 낯선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셨다. 그건 바로 겨울의 냄새였다. 뼛속까지 차갑고 기분이 상쾌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 청량한 겨울 아침의 공기 냄새.

   미리 찾아둔 대로 정류장으로 가서 새벽 첫 버스를 타고 해운대에 도착했다. 언제나 뉴스에서 보던 사람으로 가득 찬 여름의 해운대와는 다르게, 겨울의 해운대는 너무도 조용하고 한산한 데다가 쓸쓸하기까지 했다. 7시 30분, 곧 해가 뜰 시간이었다. 서서히 주위가 어스름하게 밝아지더니 저 멀리 수평선 끝에서 말간 얼굴을 한 태양이 조금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시간이 갈수록 온통 붉게 물들이며 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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