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달력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11/03
보통은 11월쯤부터 여기저기서 달력이 들어와 어떤 달력을 써야 하나 고민하기 마련인데, 불경기의 영향인지 2022년은 쓸만한 달력은커녕 쓸만하지 않은 달력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아껴뒀다 나중에 쓸 수도 없는 달력이 남아돌면 개인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달력이 아예 없으면 그것도 곤란하다. 나는 주요 일정 관리를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 하면서도 책상 옆에 항상 세워두는 탁상 달력까지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22년에 작성하여 월간에세이 2023년 4월호에 게재한 것을 수정했습니다)

뭐든 디지털 기기로 기록하는 게 검색도 쉽고 수정도 간편한데 어째서 탁상 달력까지 병행해서 사용하는가? 확정된 일정을 항상 보이는 곳에 적어놓고 확인하며, 무인도 탈출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하루하루 날짜가 지날 때마다 빗금을 쳐서 시간의 흐름을 되새기지 않으면 아무래도 오고 가는 시간이 실감나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손으로 적은 기록이 눈만 들면 보이는 자리에 있어야 기억이 희미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손 안의 디지털 기기에 몰아넣어 간편하게 만들었다 해도, 우리가 물질로 존재하는 이상 개별적인 기능을 가진 도구로서의 달력 역시 물질로 존재해야만 있는지 없는지 감각을 놓치기 쉬운 시간을 인식하며 살기에 용이하다.

그래서 적당한 탁상 달력을 사려고 잡화점에 들어가 보니 이런저런 크기의 달력들이 눈에 보이긴 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내가 선호하는 ‘한 주가 월요일로 시작되는 달력’은 팔지 않았다. 인터넷 쇼핑몰에는 그런 물건을 파는 곳도 있긴 했지만 달력 하나 사는 데에 택배비까지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주문을 포기하고, 대신에 누군가 뽑아 쓰라고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놓은 달력이 있을 법해서 찾아보았다. 생각해보니 집에서 프린터로 달력 열두 장 인쇄하는 게 대단한 수고는 아닐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내 검색 솜씨가 좋지 않은 탓인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달력을 만들어 올린 사람은 많아도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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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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