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튼이 군복을 벗을 뻔 했던 이유
2024/04/28
패튼이 군복을 벗을 뻔 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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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장구한 파노라마에는 여러 걸물들이 등장하는데 조지 S. 패튼 미군 중장 (1885~1945)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괴짜였다.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에서 조지 C 스코트가 훌륭히 묘사했던 것처럼 , 패튼은 지극히 용맹한 군인이되 용맹의 한도와 방향을 곧잘 까먹었고, 독일인들도 인정했던 창의적인 장군이었지만 20세기 장군이 아니라 그 이전 시대의 군인들처럼 만용을 부리는 일이 잦았던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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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7월 28일 일어났던 보너스 아미, 즉 퇴역군인 농성 진압 사건에는 우리가 아는 쟁쟁한 미군 지휘관들의 이름이 다 망라돼 있다. 육군 참모총장 더글러스 맥아더는 참전 수당 지급을 요구하며 워싱턴 포토맥 강변에 보여 텐트를 치고 농성하던 퇴역군인들을 공산주의자들로 규정했고 훗날의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될 부관 아이젠하워 대령에게 물리적 진압을 명령한다. “조지 S 패튼에게 맡기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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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 대령은 기겁을 하고 손을 내젓는다. “퇴역군인들에게 군대를 투입하다니오. 게다가 패튼이라니오, 그 또라이를? 그는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맥아더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아이젠하워의 만류를 무릅쓰고 맥아더는 패튼에게 보너스 아미 진압을 명령한다. 패튼은 탱크와 착검한 병사들을 몰고 보너스 아미들이 농성하던 텐트촌을 밟아 버린다. 처음에 군 투입을 지시했던 후버 대통령조차 이만하면 됐다고 만류했지만 맥아더는 못 들은체 했고 패튼은 그가 받은 명령을 필요 이상으로 꼼꼼하게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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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를 비롯하여 기라성같은 미군 장성들을 지휘하고 길러냈고 유럽을 구원한 ‘마샬 플랜’으로 역사에 남은 조지 마샬은 참모총장 시절 패튼을 평가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미군이 낳은 최고의 부하다. 하지만 그는 최악의 사령관이다.” 명령을 이행하여 전투늘 수행하고, 명령이 지정한 적을 박살내는 데는 누구보다 월등하지만, ‘전투...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이 병사 인권에 너그러웠던 이유 : 미국은 적국과 멀리 떨어져있어서 그럼
채상병 익사 사고 : 이 사고가 커진 이유는 반정부 세력들이 우파 정권 군(軍)인사에 개입하기 위하여
군장성 처벌을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권때 일어난 세월호 사고에 반정부 세력들이 난리쳤지만 문재인 정권 제천화재 사건때는 조용했듯이
잘 읽어습니다
잘 읽었어요. 오타가.분노 때문인지. 더러.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