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을 만나면 게임 오버
2023/03/27
이렇게 쓰면 너무 야박하고 미안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친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야 친척 누나, 형들과 놀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재미나게 지냈는데, 각자 바빠지면서 자주 보지 않거나 봐도 일 년에 고작 한두 마디밖에 주고받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니 당연히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이가 가까운 친척도 그리 친하다고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나이가 먼 친척은 어떻겠는가? 길거리에서 봐도 못 알아볼 확률이 높고, 먼저 알아본다면 멀리 돌아갈 만한 불편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정말로, 서로 알아본들 좋은 일이라곤 뭐 하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다.
그리하여 2주 전에는 친척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카페로 피신하기까지 했다. 그분은 분명 좋은 사람이고 존경할 만한 인물이지만, 오랜만에 어른을 만났을 때 주고받게 되는 상호작용을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바람만 스쳐도 아픈 것처럼 잘 있었냐는 인사만으로도 고통을 느끼는 상태에 빠져있기도 하는데, 내가 바로 그런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카페로 도망쳤고, 그럭저럭 보람차게 하루를 수습한 뒤에 귀가했다.
그런데 저번 주에 그 친척이 온다는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친척분은 몸이 안 좋아서 저번 주에 오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미어캣처럼 속아서 헛걸음을 한 셈이다. 세상에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지만 어쩌겠는가. 이번에는 팔자려니 생각하고 집에 있기로 했다. 그 점잖은 분이 내게 폭언을 하거나 포교를 하는 것도 아니니 감당할 수 없는 재난도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친척분이 오실 즈음 ...
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