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자
2022/07/14
부모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행동하고,
때로는 문제에 부딪히고 스스로 극복하는 법을 배우며
자라난 것은 현재의 어른 세대까지 뿐이다.
요즘 아이들은 그런 기억을 가질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그들이 보는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터빈홀은 모든 어린이들의 꿈인 거대한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약 3,300제곱미터인 홀 내부에 덩치 큰 어른들도 가뿐히 앉을 수 있는 3인용 그네가 사방에 설치한 것이다.
내가 터빈홀을 찾았을 당시 그곳은 이미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네를 차지한 것은 주로 머리숱이 적어지기 시작한 아버지들로, 그들의 몸이 앞뒤로 왕복할 때마다 두 다리가 공중에서 팔랑팔랑 흔들렸다. 경사진 바닥 위에 깔린, 1970년대 풍의 강렬한 오렌지색·붉은색·갈색·파란색 줄무늬로 꾸민 푹신한 카펫 위에 팔다리를 쫙 벌리고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 역시 대부분 성인들이었다. 머리 위에는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거대한 미러볼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땅 위의 방문객들을 잠깐씩 비추고는 또 떠나갔다.
<하나, 둘, 셋, 밀어!One, Two, Three, Swing!>라는 제목의 이 거대한 설치미술은 인간이 자본주의나 소속감, 정체성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을 놓고 고민하는 사이에도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덴마크의 아티스트 그룹 수퍼플렉스Superflux의 작품이다. 작가들은 이 작품이 크게 ‘무관심Apathy, 제작Production, 움직임Movement’이라는 3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한섹션인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예술과 놀이를 결합하려는 테이트 모던 갤러리의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아티스트 카스텐 횔러Carsten Höller는 미끄럼틀이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믿음 아래 거대한 나선형 미끄럼틀 작품을 설치해 그 위로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몰입’을 동시에 선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예술기관들도 이러한 트렌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런던자연사박물관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던 밤샘파티가 인기를 끌자 몇 년 전부터 성인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행사를 기획하여 티켓을 팔기 시작했다. ‘어른들을 위한 다이노스노어Dino-Snore’에 참가한 사람들은 라이브 음악과 코미디쇼, 공룡을 테마로 한 비디오 게임을 즐기다가 소등시간이 되면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아이들의 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계의 트렌드는 이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기관에서 주최하는 ‘아이들을 위한 다이노스노어’ 행사에는 음악도, 코미디쇼도, 비디오 게임도 제공되지 않는다. 만7세에서 11세 사이의 아이들이 체험하는 거라곤 ‘놀이와 학습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홍보 문구에 꼭 맞는 야간 박물관 투어나 과학자가 진행하는 교육용 실험 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