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냐는 말의 어려움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2/06
2022년 10월은 걱정이 많은 시기였다. 이 정도면 입상할 만하지 않나…… 하고 건방진 생각을 했던 공모전 둘에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고, 잠잠하던 어머니의 지병이 다시 증상을 보였으며, 아버지가 철봉에서 거꾸로 떨어지는가 하면, 두 사건을 무사히 넘기고 나니 나의 건강 검진 결과가 다양한 합병증으로 향하는 육체적 하강 곡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당장 큰일이 터졌다고 할 정도는 아니라 어찌저찌 바쁘게 지냈는데, 그러다 2022년 10월 29일 저녁에 이태원에서 무슨 사고가 나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스마트폰에서 슬쩍 지나갔다. 나는 핼러윈이 코앞이라 사람이 워낙 많이 모이다 보니 별 사고가 다 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잠시 후에 사상자가 많다는 속보에 사고가 상당히 큰 모양인가 생각했고, 뒤이어 대통령이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는 속보에는 과장된 리더십을 보여주는구나 싶어 한숨지었다.

그러다 쉬는 동안 상황을 더 알아보니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실감은 잘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고, 이태원이라는 곳은 오래도록 나와 별 관계가 없는 곳으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도 가까운 곳이나 자주 가는 곳에서 일어나면 더 심각하게 느껴지듯이, 멀고 연이 없는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건보다는 당장 내게 닥친 문제거리들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이런저런 뉴스와 커뮤니티 게시물을 뒤적이며 처참한 상황을 한참 보고 나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몰려오기 시작했다. 진행형이던 사고가 상황 수습만은 끝나서 받아들여야 하는 결론이 나온 탓도 있을 테고, 내가 꽉 막힌 원고를 약간이나마 진척시켜 잠시 심리적인 여유를 얻은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제야 이태원이 전혀 연이 없는 곳이 아님을 떠올리고 본격적인 걱정을 시작했다. 2주인가 3주 전에 이태원에 사는 친구 집에 갔다오기도 했는데 왜 감각이 마비되어 있었을까? 나는 이 사실을 기이하게 느끼다, ‘그런 곳’이나 다니니 화를 입는 것이라는 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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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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