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함께한 유행(遊行)
2023/02/10
나는 대부분의 내 글씨체를
길바닥에서 만들었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길바닥 말이다.
내 첫 글씨체인 나비체는
취리히 길바닥에서 만들어졌는데
취리히 중앙역 근처
아케이드가 많은 곳을 걸어 다니다가
맘에 드는 스팟을 발견하고는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날이 너무 추워 손이 말을 듣지 않아
숫자 8을 가로로 눕힌 모양을 그리면서
손을 풀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나비 나는 모양 같기도 하고
무한대 기호 같기도 했다.
적당히 손에 열기가 다시 돌아와
그 리듬과 방향으로
한글을 써 봤는데
뭔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는 이 새로운 모양이
자칫 어딘가로 도망가 버릴까 봐
내가 아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