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할 곳이 없는 거야

Sun Kim
Sun Kim · 환경 보호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021/10/31
영화 <쁘띠 마망>, 스틸 컷

 인경이네 집은 늘 북적였다. 간혹 인경이가 없을 때에도 복닥거렸다. 방하나에 주방 겸 거실 하나가 전부인 그 작은 집에서 어떻게 10명 가까이 어울려 놀았는지 미스터리지만, 집과 집 사이, 내 어깨 높이 정도 되는 짙은 녹색 문을 열고 왼쪽으로 난 비좁은 통로를 따라가면 인경이네 집이었다. 치킨이나 피자 따위를 시켜먹을 때마다 사장님께 우리는 그 쪽문을 강조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그 문 아래 어디쯤에 적갈색 벽돌을 쿡쿡 찌르면 열쇠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배고프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무리 속에서 누군가 허전한 속을 고발하면 인경이는 김치찌개를 데워줬다. 우리가 김치찌개 냄비를 다 비우고 가는데도 다음날이면 김치찌개가 또 있었다.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우리는 그날 학교에서 겪었던 재수 없는 에피소드들을 나누면서 깔깔 웃었다. 엎드려 자고 있는데, 평소에는 아무 말 않던 영어 선생이 미쳐서 다짜고짜 일으켜 세워 체면을 깎은 이야기. 점심을 먹고 교내 식당을 빠져나가는 길에 침을 퉷 뱉었다가 음악한테 딱 걸린 너를 내가 다 봤다는 이야기. 교복을 줄이면 줄였다고, 늘이면 늘였다고, 양말 높이까지 간섭하는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망할 교칙. 3학년 2반의 그 멋진 오빠.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시답잖은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밥공기가 말갛게 비워져 있었다. 수저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면 인경이네 집에도 학교 종이 땡땡땡 울리는 것처럼 일제히 주섬주섬 겉옷을 챙겼다.
 “아오, 김선미 때문에 맨날 이렇게 나가는 거 아니야.”
 이렇게나 배려가 깊었다. 비흡연자인 나를 생각해서 2명이든, 8명이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태우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 같은 잔소리도 꼬박꼬박 챙겨주었다.
 “너 수행평가 안 해?”
 “선미 너, 학원 갈 때 되지 않았어?”
 “김선미, 그러다가 성적 떨어지면 어쩌려 그래.”
 인경이네 근처 편의점 앞에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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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차를 산 것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줘 너무 잘했다고 까지 생각해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소심하게 목소리를 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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