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조카 노산군 영월로 유배 보내다
[계유정난 ②]
‘계유정난(癸酉靖難)’이란 용어 속에 그 의미가 함축돼 있다. 자칫 우리는 계유정난의 한자 표기에서 마지막 ‘난’ 자를 어지러울 ‘亂’ 자로 잘못 알고 있을 수 있다. 병자호란, 임진왜란에는 ‘亂’ 자를 쓴다. 그런데 계유정난은 어려울 ‘難’ 자를 쓴다. 아마도 ‘亂’ 자와 ‘難’ 자의 의미 차이에 시사점이 있는 것 같다. ‘亂’ 자는 난리라는 의미로 ‘전쟁’과 같은 큰 변란을, 어려움 또는 곤란함의 ‘難’ 자는 전쟁보다는 작은 소란을 의미하는 것 같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이란 용어 속에 그 의미가 함축돼 있다. 자칫 우리는 계유정난의 한자 표기에서 마지막 ‘난’ 자를 어지러울 ‘亂’ 자로 잘못 알고 있을 수 있다. 병자호란, 임진왜란에는 ‘亂’ 자를 쓴다. 그런데 계유정난은 어려울 ‘難’ 자를 쓴다. 아마도 ‘亂’ 자와 ‘難’ 자의 의미 차이에 시사점이 있는 것 같다. ‘亂’ 자는 난리라는 의미로 ‘전쟁’과 같은 큰 변란을, 어려움 또는 곤란함의 ‘難’ 자는 전쟁보다는 작은 소란을 의미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차이도 중요하겠지만 이 용어에는 철저하게 승리자의 역사관이 반영됐다는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계유정난은 ‘수양대군이 일으킨 난’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질적인 의미는 ‘수양대군이 난을 진압’한 것이란다. 난을 일으킨 사람이 난을 진압한 사람이 되는 형용모순. 요즘 한한 말로 ‘뜨아아’,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그럼 앞에서 던진 질문, 수양대군은 왜 김종서의 집으로 갔는가에 대한 이유를 알아보자.
수양대군은 형 문종의 유지로 이행되고 있는 ‘고명대신’의 ‘황표정사’에 큰 불만이 있었다. 모든 인사 전횡이 일어나는 원인이고, 이를 바탕으로 고명대신 중에서도 김종서가 모든 권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지는 병약했고, 황보인은 유약했기에. 이런 상황이 라면 그래도 자기가 왕실 어른이고 왕의 제일 큰 삼촌인데 가만 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날 치 《단종실록》 기록을 보자.
“간신 김종서 등이 권세를 희롱하고 정사를 오로지하여 군사와 백성을 돌보지 않아서 원망이 하늘에 닿았으며, 임금을 무시하고 간사함이 날로 자라서 비밀히 이용에게 붙어서 장차 반역을 도모하려 한다.… 내가 이것들을 베어 없애서 종사를 편안히 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여기서 우리는 여러 차례 입 밖에 냈던 ‘김종서’ 말고 새로운 인물의 이름이 소환됐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용(李瑢)’. 이렇게 본명을 쓰면 낯설지만, ‘안평대군’이란 작호를 쓰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예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