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china21
allchina21 · 사마천 ‘史记’ 연구자
2023/12/31
011-4. 곧은 붓, 휜 붓
직필(直筆)과 곡필(曲筆)
출처: 민중의 소리
최저(崔杼)가 주군을 시해했다: 죽음조차 불사하는 ‘직필’이자 ‘사필(死筆)’
기원전 6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기까지 제(齊) 나라의 영공(靈公)과 장공(莊公) 때 제나라 조정의 실세였던 최저는 자신의 손으로 옹립한 장공이 자신의 후처인 당강(棠姜)과 간통을 일삼자 기원전 548년 난을 일으켜 장공을 시해했다. 최저는 장공의 측근들까지 대거 제거한 다음 공자 저구(杵臼)를 모셔와 옹립하니 이가 경공(景公)이다. 경공이 즉위하면서 최저는 스스로 우상(右相)이 되고, 공모자인 경봉(慶封)을 좌상에 앉혀 경공 초기 제나라 공실의 실권을 농락했다.
그런데 이때 제나라의 기록을 담당하고 있는 사관 태사(太史) 백(伯, 태사 가문의 장남)이 “5월 을해일에 최저가 주군 광(光, 장공)을 시해했다”라고 직필했다. 최저는 ‘불문곡직(不問曲直)’ 태사 백을 죽였다. 그러자 그 동생 중(仲)이 형을 이어 똑 같이 최저가 장공을 시해했다고 썼다. 최저는 중도 죽였다. 이어 그 동생 숙(叔)도 두 형을 이어 최저가 장공을 시해했다고 직필했고, 최저는 숙도 죽였다. 그랬더니 막내 동생인 계(季)까지 나서 죽음을 불사하면서 형들처럼 직필했다. 
당시 최저는 태사 집안의 장공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었다고 기록할 것을 요구했다. 최저는 태사를 협박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태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통렬하게 쏘아붙였다. 

“사실에 근거하여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은 사관의 직책이오. 목숨 때문에 사관의 일을 저버리는 것은 죽는 것만 못하오. 당신이 저지른 일은 이르건 늦건 언젠가는 다들 알게 될 것이니 설사 내가 쓰지 않는다 해도 당신의 죄와 책임은 덮을 수 없는 일이오. 이를 덮으려 하는 것은 천하의 웃음거리만 될 뿐이오.”

최저는 사관들의 붓이 이토록 날카롭고 무서운 것이냐며 차마 계까지는 죽이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역사서에는 최저가...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사마천의 ‘사기’ 공부를 통해 중국 역사 문화와 중국 중국인을 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
112
팔로워 31
팔로잉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