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공부
2023/09/27
‘중년의 공부 열정은 장마 끝난 후 불볕더위와 같다.’ 각종 모임을 찾아가보며 불쑥 드는 생각이다. 독서 모임과 향토사, 건축 해설, 바다 생태를 공부하는 곳에 찾아가 보면, 나이 지긋한 분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한 모임의 진행자는 이렇게 말한다. “평생 미뤄 놨던 분야에 몰입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다른 곳에서 만난 이를 또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자신이 바라는 배움에 목말랐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의 50~60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양대 물결의 틈바구니에서 자란 세대다.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한편으로는 수천 년 우리를 옥죄어 온 체제의 폭압성을 허물어뜨리려는 저항이었다. 이러한 거대 담론은 결국 그들을 생존과 희생으로 내모는 각박한 현실을 연출한다. 개인의 자아와 정서를 돌보는 게 사치처럼 여겨져 온 세월이었다.
이 고통은 이제 퇴직 후 상실로 이어진다. 평생직장에서 형성된 정체성의 상실, 회사와 가족 내에 세워졌던 권위의 상실, 공고해 보이던 인간관계가 한꺼번에 끊어지는 관계의 상실, 나이라는 어쩔 수 없는 괴물이 안겨 주는 건강의 상실이 그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공허감뿐.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 ‘잉여 인간’이라는 당혹감이 엄습한다.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가 하는 자괴감도 들 것이다. 이 공간을 채우는 방법이 바로 공부다. 그간 타율적이고, 당장에 써먹는 공부를 해 왔다면, 앞으로는 존재론적 삶을 돌볼 수 있는 사색과 독서를 해야 할 시기다. 문학, 철학, 음악, 미술 같은 순수 학문 공부도 필요하다.
노후의 윤택한 생활은 연금이나 재취직 같은 경제적 풍족 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남은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 줄 스승과 도반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하자.
그래야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 상황이 급변해도 흔들리지 않고, 한계에 부딪혀도 포기하지 않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신문사 논설위원 출신. <부산 백 년 길, 오 년의 삭제 >, <헤로도토스 역사 따라 자박자박>, <유혹으로 읽은 일리아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