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마! 교직생활] 20장. 인간관계와 쓰레기

류재연
류재연 인증된 계정 · 정교사, 기간제 교사, 그 후 교수
2024/04/14
군대 가기 몇 달 전에 나는 아버지에게 우리 집에서 자고 가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집을 사셨다. 입대하기 보름 전이다. 최초로 우리 집이 생긴 것이다. 15평이었지만 방이 3칸이었다. 좋았다. 그전까지 우리는 남의 집에 전세로 살았다. 초등학교 때는 세 들어 살던 집이 철거되면서 이사해야 했다. 다른 곳에 살 때는 장마철이면 물이 방바닥까지 차올랐다.
   
5층 아파트의 4층에 살았다. 결혼하여 독립하기 전까지 살았다. 이사하고 좋은 점이 있었다. 쓰레기 버리러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연탄보일러를 사용했다. 새 연탄은 다들 아파트 입구 계단 옆에 두었다. 필요할 때 몇 장씩 집으로 가지고 올라갔다. 사용한 연탄재는 집 벽에 있는 구멍 난 쓰레기 투입구로 던지면 그만이었다. 연탄재는 아파트 지하, 쓰레기 수거장으로 곧장 떨어졌다. 옛날 아파트에는 그런 시설이 있었다. 몇 년 후에 그곳으로 쓰레기 투기가 금지되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저 밑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분이 내가 버린 연탄재에 맞으면 다칠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연탄재를 버리기 전에 무엇인가로 일단 배출구를 두드리고 연탄재를 밀어 버렸다. 뾰족한 물건을 버릴 때는 혹시라도 그분들이 다칠지 몰라 신문지로 꽁꽁 싸매어서 버렸다. 한 번은 형광등을 그대로 버린 적이 있다. 조금 후 바닥에서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때의 미안함이 지금도 고스란히 올라오는 것 같다. 
   
그러다가 쓰레기 분리수거가 정착되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95년이라고 한다. 내가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대학의 조교로 근무하던 때이다. 처음에는 분리수거에 관한 조롱 기사도 많았다. 사람들이 잘 분리해서 배출하면, 청소하는 분이 아무렇게나 뒤섞어서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아마 그때는 분리된 쓰레기를 수거하고 처리하는 준비가 미비해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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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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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학생들과 생활하다 교수가 되었어요. 교사 시절 급훈은 '웃자'와 '여유'. 20년 교수 생활 내내 학내 부조리와 싸우다 5년간 부당 해고, 파면, 해임되었다 복직 되었어요. 덕분에 정신과 치료, 교권 확립, 학교 상대 나홀로 소송의 노하우를 선물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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