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維新)의 유전(遺傳)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1/28

   
유신? 유전? - <유신 그리고 유신 – 야수의 연대기>를 읽고 
.
설 연휴에 애니메이션 <슬램덩크>를 봤다. 만화 <슬램덩크>를 탐독했을 때가 대학 말년 무렵이었으니 30여년 세월이 흘러가 버렸지만 장면 하나, 인물 표정 하나에서 숨죽이며 만화책  페이지를 넘기던 순간이 선명한 영상으로 되살아나는 전율을 느꼈다. 원래 만화에서 일본 이름을 쓰지 못하고 등장인물들에게 강백호니 서태웅이니 하는 한국 이름을 붙였던 것은 만화가 나왔던 시대적 한계 때문이다. 한국에 처음 연재가 시작되던 즈음, 일본 대중 문화 수입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일본 이름은 한국식으로 바꿔야 하는 게 심의 룰이었다. 
.
그렇듯 해방되고 50년이 돼 가도록 ‘일본’은 최대 교역국에 우방국가이면서도 저물지 않는 경계와 근원적 공포의 대상이었다. “저놈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우리 안의 식민 잔재‘를 청산하려고 기를 썼다. 학교 칠판에 다꽝(X) 단무지(O)를 쓰고 외우게 하던 시절, 어느 열혈 교사 앞에서 ’즈봉‘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여지없이 뺨을 맞았던 기억은 또 다른 의미로 선연하다. 일본말 쓴다고 혼내는 건 그렇다 치는데 뺨 올려붙이는 문화야말로 일본놈한테 배웠던 거 아닌가. 마치 ’칙쇼‘를 부르짖으며 “즈봉이라는 말을 쓰다니 이래서 조선놈들은 안돼!” 하는 꼬라지 아니었던가 말이다. 
.
밉든 좋든 싫든 말든 우리의 ’근대‘를 강제로 세팅했던 것이 일본 제국주의이기에 그 자장과 영향력을 통째로 부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에서도 두어 번 무척 허무해지는 대목이 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무슨 연설이나 훈화를 할 때 즐겨 넣던 추임새 “에... 또... ”가 일본 말이라는 걸 나는 나이 쉰 셋에 <슬램덩크>를 보며 처음 알았다. 또 운동복 개는 장면에서 놀랐다. 어 저거 훈련소에서 속옷 접어 관물 만들 때 숙달된 조교가 하던 바로 그 방식이 아닌가. 
.
청산해 버리고 싶으나 아닌밤중에 홍두깨처럼 코앞에 불쑥 나타나고, 애써 외면하...
김형민
김형민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273
팔로워 3.4K
팔로잉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