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차 주부(主夫)였다.

포겟미낫
포겟미낫 ·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브런치 작가
2022/03/29
‘오늘은 뭐를 해 먹지?’

음식을 해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정말 어떻게 매일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바로 주부(主婦)라는 명칭이 이 세상에서 위대하게 느껴지고 경외감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때는 지방에 있는 발전소로 부장 발령을 받고 난 후의 일이었다. 점심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외진 사택이라 아침저녁은 혼자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귀차니즘과 게으름이 발동되는 날이면 무노동 무음식은 자연스럽게 세트메뉴로 따라왔다. 물론 혼자서 외식해도 되지만 홀로 음식점에 가서 앉아있는 것도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고, 어차피 지방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도 가급적 사택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회식이 있는 날이면 저녁을 해결할 수 있지만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주방 도구를 서울에서 가져와야 했다. 그래도 저녁 시간은 여유가 있었지만 아침은 귀찮아서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이른 시간에 싱크대 앞에서 서성이는 것이 괜한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고, 그렇다고 그 시간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했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사고는 늘 그렇게 아침 허기를 몰고 왔다. 


매주 서울에 올라갔다 내려올 때 한두 개 챙긴 것들이 사택 주방에 가득 차고, 몇몇 도구가 맘에 들지 않아 현지에서 구입한 것들까지 세팅하고 나니 주방 풍경은 그럴싸하게 구색을 다 갖춘, 준공 후 가동을 기다리는 발전소처럼 보였다. 이제는 상업운전(?)만 남은 것 같았다. 그래도 이미 한물간 시간 연구와 동작연구의 창시자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Taylor System)은 들어 알고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의 위치를 적절하게 손에 바로 닿는 곳에 배치한 후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손바닥만 한 주방에서 무슨 노동생산성 제고라는 거창한 명분을 갖고 동작의 최소화를 통한 시간 절약을 시도해 보는 일도 우스운 일이지만, 새로운 일이 생기면 결과에 상관없이 뭔가 효율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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