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한국의 밥상 (3)-내가 살던 우주의 중심

우석영(동류실주인)
우석영(동류실주인) 인증된 계정 · 철학자. 비평가. 작가.
2023/09/21

지구상의 거의 모든 동물이 결여/취약성/배고픔이라는 사안에 속박되어 있지만, 이를 처리하는 방식과 관련해 인간에게는 특이한 면모가 있다. 

태어난 당일, 바다로 기어들어가 제 첫 날의 삶을 시작하는 새끼 바다거북을 본 적이 있는가. 채 눈도 뜨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그 어린 것들은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닐 텐데 바다로, 바다로 무작정 기어가서는 먹을 것을 스스로 구하는 삶을 곧바로 시작한다. 그런 그들과, 10년이 훌쩍 넘도록 부모에게 제 먹이를, 온갖 편의와 복지를 의존하는 인간의 새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유소년기에 뭔가를 배우고 연마한다는 ‘인간만의 전통’ 탓인지, 인간의 어린 것들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긴 인생의 시간을 돌봄의 고치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돌봄의 고치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돌봐졌던가? 어린 시절 우리를 돌봐주었던 손길 가운데에서도 조리調理(여러 물질을 잘 골라 음식을 만듦. 요리料理라 해도 된다.)하는 손길을 우리는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 다섯 명의 독일 병사가 성적 쾌락의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흘리며 거위 요리를 먹을 수 있었던 것도, 거위를 조리한 카트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리하는 손이야말로 돌봤고 돌보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아기들과 어린이들을. 모든 취약한 이들을, 즉 만인을. 

그래서 그런 걸까? 우리의 어린 시절은, 누군가 조리해놓은 후 우리의 입 안으로, 입 근처로 옮겨놓아 어린 우리가 즐겼던 어떤 물질의 맛과 향과 색, 그러나 오늘에도 느낄 수 있는 그 맛과 향과 색에 (가장 많이) 엎드린 채, 숨어 살고 있다. 안토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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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철학. 탈성장 생태전환. 포스트휴먼 문학 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행동사전>(공저) <불타는 지구를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걸으면 해결된다>(공저) <숲의 즐거움> <동물 미술관> <철학이 있는 도시> <낱말의 우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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