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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살리는 미래 농업
식량 문제 해결, 생명공학이 답이다
2024/12/17
에디터 노트
20세기 이후 전 세계 인구가 급증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문제가 여럿 있습니다. 식량 부족 문제도 포함됩니다. 농업 정책과 함께 식량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생명공학 기술이 주목 받습니다. 사람이 먹고 자연에서 키우는 대상이기 때문에 때로는 우려 섞인 비판을 듣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실제로는 위험이 과장됐으며, 미래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반론도 많습니다. 생명공학이 농업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안전성 논쟁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이상열 경상국립대 응용생명과학부 연구석좌교수가 정리했습니다.
세계농업기구(FAO), 국제농업개발기금(IFAD), 유니세프(UNICEF),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 발간하고 있는 ‘세계 식량 안보 및 영양 현황(The State of Food Security and Nutrition in the World, SOFI)’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위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식량 부족에 시달린 사람은 2020년 기준으로 최소 7억 2000만 명에 이른다. 특히 내전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지역의 인구는 다섯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영양 부족이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림 1).
또한 2050년 세계 인구는 약 95억 명으로 증가할 것이 예상되므로, 현재 추세로 식량을 소비하면 지금보다 70% 이상의 식량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으려면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방법이 필요하다. 기후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고 생산성도 높인 신품종을 개발하는 생명공학 기술이 중요해진 이유다.
유전자변형(GM) 기술 개발과 활용
특정 형질을 가지는 우수 작물 품종을 만들 때 사용한 고전적인 방법은 전통 육종이다. 육종은 작물의 유전체에 전반전인 변화를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많은 유전자 변이를 교배와 선택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조절해 우수한 형질을 가지는 작물을 선발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생명공학을 이용한 분자 육종 기법은 원하는 목표 유전자의 특정 부위나 단일 유전자의 변경을 인위적으로 유도하고, 작물의 유전체 변화를 통해 우수한 형질의 품종을 개발하는 방법이다. 이 기법은 전통 육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고 비용이 적게 들어 원하는 작물을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같이, 식물 유전체 정보를 이용해 기존 생물체에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를 끼워 넣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성질을 갖게 함으로써 병충해나 환경 스트레스에 강하고 생산성이 증진된 작물을 개발하는 방법을 유전자변형(Genetically Modified, GM) 기술이라고 한다. 유전자변형 작물 개발 기술은 1983년 매리 델 칠튼 미국 워싱턴대 교수팀이 식물에서 뿌리혹병을 일으키는 아그로박테리아(Agrobacterium tumefaciens)의 병원성 기작을 밝히는 과정에서 처음 제안됐다. 박테리아 유전자가 식물 유전체로 이동해 정착하는 것을 알아내면서 처음으로 식물 유전자 변형을 인위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현재의 많은 유전자변형 작물이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처럼 특정 식물의 유전체에 원하는 유전자를 삽입하는 방법에는 아그로박테리아를 이용한 플로랄 딥(floral dip), 식물 세포의 세포벽을 제거해 세포벽이 없는 상태를 만든 뒤 원하는 DNA를 주입하는 프로토플라스트(Protoplast), 유전자 조각을 금 또는 텅스텐의 나노입자 금속 표면에 묻혀서 총으로 쏘아 식물체에 도입하는 유전자 총(gene gun) 등이 있다.
다만 아직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있다. 원하는 유전자를 특정 유전체 부위에 정확히 도입하지 못한다. 이 경우, 유전자가 삽입되고 발현돼 원하는 유전 형질을 가지는 개체를 선발했더라도, 삽입된 부위의 원래 유전자 기능을 잃게 되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유전자변형 기술을 활용해 최초로 상용화된 작물은 1994년 잘 무르지 않는 유전자변형 토마토였으며, 본격적으로 상업화된 것은 1996년 몬산토㈜가 개발한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변형 콩과 해충 저항성 옥수수다. 그 후, 2019년까지 32개 작물 540 종류의 유전자변형 작물이 개발돼 재배를 승인받았다. 유전자변형 작물 재배 면적은 2019년 기준 1억 9000만 헥타르로, 전 세계 농경지의 약 13%에 해당한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4980만 헥타르(55%), 아르헨티나 1710만 헥타르(19%), 브라질 940만 헥타르(10%), 캐나다 580만 헥타르(6%), 중국 330만 헥타르(4%) 순이었다. 주요 5개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작물로는 콩 5440만 헥타르(74%), 면화 980만 헥타르(11%), 유채 460만 헥타르(27%), 옥수수 536만 헥타르(31%) 등 4개 작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재배 형질 별로는 제초제 저항성(9590만 헥타르), 해충 저항성(2520만 헥타르) 순이다.
유전자변형 작물에 의한 수확량 증가는 개발도상국에서도 특히 두드러진다. 방글라데시에서 재배한 해충 저항성 유전자변형 가지는 일반 가지보다 수확량이 20% 이상 많고 농약 구매 비용을 대폭 줄여 농가 소득을 증가시켰다. 유전자변형 작물이 농약과 에너지를 적게 사용해 탄소 배출을 줄여 친환경적이라는 보고도 있다. 2014년 메타 분석에서는 유전자변형 기술 채택으로 화학 살충제 사용이 37% 감소하고, 작물 수확량이 22% 증가했으며, 농민 이익이 68%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은 2015년도 곡물의 식량 자급률이 28% 정도이며 옥수수의 국내 자급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식물성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인 콩은 자급률이 7% 미만으로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량 수입국이다. 2015년 한 해에만 유전자변형 옥수수 744만 톤, 유전자변형 콩 92만 톤을 수입했다. 수입국은 주로 미국, 브라질 등 소수의 국가에 집중돼 있는데, 이들 국가가 모두 유전자변형 작물을 적극적으로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유전자변형 작물 수입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림 2).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유전자변형 작물의 발전과 함께, 이들 작물의 안전성, 특히 환경 위해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변형 콩과 해충 저항성 유전자변형 옥수수를 상업적으로 재배한 지 25년이 지나는 동안, 유전자변형 작물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공포 수준으로 전파됐다. 2012년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변형 옥수수가 실험 동물의 암 발생률을 높이고 신장 이상을 유발한다는 논문이 발표되면서 사회적 공포감을 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이 논문은 실험동물의 개체수가 부족하고 부적합한 종으로 실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학회지에서 논문이 철회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등에서 과학적 근거 없이 유전자변형 작물의 유해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2016년 5월 미국과학한림원(NAS)이 지난 20여 년간 이뤄진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해 유전자변형 농산물의 안전성을 평가한 결과,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일반 식품과 같이 안전하다고 결론 내렸다. 유전자변형 작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던 유럽과학원(EAS)도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또한 2016년 유전자변형 작물에 부정적인 기업들의 후원을 받고 있던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유전자변형 작물 반대 운동을 펼치자, 생존하는 노벨상 수상자 108명이 그린피스에게 유전자변형 작물 반대 운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유전자변형 작물의 안전성을 강조하면서, 정치적인 문제로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선동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현재 학계 절대 다수의 의견에 따르면,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유전자변형 작물의 유통과 섭취에 특별한 이상 현상이 보고된 적은 아직 없다. 유전자변형 작물은 유해하지 않고 인류가 섭취해도 문제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안전성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에 과학계에서는 유전자변형 작물 품종에 대한 규제와 법을 통해 끊임없이 과학적인 위해성 검증을 거치고 있다. 따라서 근거 없는 막연한 우려로 유전자변형 작물을 포함한 생명공학 품종 개발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유전자교정(GE) 기술과 활용
유전자변형 작물개발은 외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도입해 작물의 형질 변화를 유도하기 때문에, 유용 유전자변형 작물의 제조, 선발 등의 과정에서 외래 유전자가 남게 된다. 유전자변형 작물이 안전성과 별개로 대중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주는 이유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 새로 개발된 기술이 ‘유전자 가위’라고도 불리는 유전자 교정(Genome Editing, GE) 기술이다. 유전자 가위는 특정 DNA 염기서열을 인식하고 잘라 원하는 형질을 얻는 방법이다. 이 기술은 자르는 방식에 따라 가장 먼저 개발된 1세대 유전자 가위인 아연-손가락 핵산 분해 효소(ZFNs) 기술, 2세대 전사 활성자 유사 핵산분해 효소(TALENs) 기술, 3세대인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기술로 분류된다.
각 기술은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캐스9 기술이 설계하기 쉽고 비용도 저렴해, 이 기술이 등장하면서 유전자 교정 기술의 활용 범위와 적용 대상이 넓어졌고 상용화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재 유전자 교정 기술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연구도 단연 크리스퍼-캐스9을 이용한 기술이다 (그림 3).
크리스퍼(CRISPR)는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머리글자를 딴 줄임말이다. 세균이 자신에게 침입한 바이러스 DNA를 조각낸 뒤 그 일부를 세균 유전자의 ‘크리스퍼’라는 영역 사이에 보관해 바이러스의 재감염에 대응하는 전략을 활용한 기술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침범해 왔을 때, 세균은 크리스퍼에 보관한 DNA로부터 유도 RNA(guideRNA, gRNA)를 만들어 낸다. 그 뒤 캐스9(Cas9)이라는 바이러스 DNA 절단효소와 함께 재침입한 바이러스의 DNA와 일치하는 부분에 결합해 바이러스 DNA를 분해하고 자신을 보호한다. 2012년 이 유전자 가위 기술의 원리를 규명한 두 여성 과학자는 202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하면 가이드 RNA가 미리 표적으로 정해 둔 DNA 염기서열을 찾아가 캐스9 단백질로 잘라낼 수 있다. 그 뒤 잘린 부위를 다시 잇거나 절단 부위를 다른 염기서열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편집을 유도한다 (그림 4).
이 기술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와 같은 원리를 활용했다. 유전자변형 작물처럼 외부 유전자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대상 작물의 세포가 가지는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거나 치환함으로써 염기서열을 바꾼다. 따라서 유전자 교정 작물 내에 외래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는 채로 작물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인공 제한효소(Engineered nuclease)를 의미하는 유전자 가위는 18~40개로 구성된 염기서열을 특이적으로 인식해 DNA 두 가닥을 절단하도록 고안된 효소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세포 내의 특정 유전자에 이중나선 손상(Double strand break)을 도입할 수 있다. 이 경우, 모든 세포는 손상을 효과적으로 복구하는 비상동 재접합(Non-homologous end joining, NHEJ)방법과, 상동 재조합(Homologous recombination, HR)이라는 두 가지 수선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비상동재접합 기술은 절단 부위를 그대로 이어주는 효율적인 복구 시스템이지만 이 과정에서 몇 개의 염기쌍이 삽입 또는 제거(Small insertion and deletion, indel) 됨으로써 유전자 가위를 도입한 세포에서 높은 비율로 유전자 변이가 유도된다. 반면, 상동재조합은, indel을 수반하지 않는 DNA 수선방법으로 절단된 부분을 복구한다. 그래서 염기서열의 삽입이나 제거 등과 같은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절단된 DNA 주변과 동일한 염기서열(homologues arm)을 포함하는 벡터(전달체)를 유전자 가위와 함께 세포에 도입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위치에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제어 또는 유도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활용해 2012년 흰가루병 저항성 유전자교정 밀, 2014년 흰잎마름병 저항성 유전자교정 벼, 2019년 올레인산 함량이 증가된 유전자교정 콩, 2022년 비타민 D를 보충하는 유전자교정 토마토, 공기 중 질소를 이용할 수 있는 유전자교정 벼가 개발됐고, 일부는 상업화 승인을 받아 시판되고 있다. 유전자변형 작물이 개발돼 상용화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과 1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유전자교정 작물은 개발에서 상용화까지 시간과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유전자변형 작물을 반대해 왔던 일본은 2021년 신경전달물질인 GABA(Gamma-aminobutyric acid)를 생산하는 유전자교정 토마토 시판을 허가했으며, 미국, 캐나다 등도 간단한 심사로 유전자교정 작물의 상업화를 허가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도 유전자교정 작물에 대한 현재의 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중국도 최근 유전자교정 작물 승인에 대한 규제 완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유전자교정 작물을 유전자변형 작물처럼 위험한 농산물로 취급하고 있어 상용화가 어려운 실정이다.
생명공학 품종 개발을 통한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
기후위기, 감염병 팬데믹, 고령화에 대응하면서, 증가하는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작물의 생산성과 기능성을 대폭 향상시키는 생명공학 기술 개발뿐이다. 따라서, 전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는 식물 유전체에 대한 빅 데이터 및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분자 육종 기술과 신품종 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빌 게이츠는 “생명공학 품종을 포함한 농업 혁신은, 가난한 국가의 자원을 고갈시키거나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사업가 짐 로저스 역시 “농업은 21세기 신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모두가 미래의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명과학자가 해야 할 책임과 임무를 제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인류의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유전자변형 작물, 유전자교정 작물 등 유용한 생명공학 품종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투자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글 이상열 경상국립대 응용생명과학부 연구석좌교수
그림 신인철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시리즈 기획 유장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과학기술유공자지원센터장, 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자원관리본부장
편집 윤신영 alookso 에디터
편집 윤신영 alookso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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