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극장 - 저항과 투쟁에 대한 막연한 향수

동네청년 · 망원동에 기거하는 동네청년입니다.
2024/01/16
만약 서울이 다른 나라의 대도시 및 수도들과 차별화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근현대에 와서 상당부분을 복원한 고궁들이나 성벽이 다 잘려나가 길 한복판에 무인도처럼 보존되어 있는 남대문이 아니라 정기적 행사처럼 반복되는 광화문 앞 광장의 집회이다. 가끔씩 전국구 이슈가 되어 다수대중의 지지 및 참여로 이어졌던 2016년의 탄핵집회나 2019년의 반일불매운동, 아니면 2008년의 미국산 소고기 불매운동 등의 사건을 제외하고도 시민단체, 종교단체, 사회적약자 및 소수자를 대변하는 비영리기관에서부터 이것들을 제어하려는 정체불명의 재단법인의 반집회집회에 이르기까지 1년 내내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이익집단의 권리 및 이익은 상시화된 집회로써 시도때도 없이 주장된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 집회들이 합법적 집회로 '허가'를 받으려면 사전에 신고를 해야 되는데 매 주말마다 대형집회가 있는 것으로 보아 모르긴 몰라도 관할경찰서의 집회 예약명단은 아마 1년 내내 빼곡히 차 있는 인근 파인다이닝의 그것을 방불케 할 것 같다. 만약 집회와 시위가 민주주의사회의 상징적인 지표라면 광화문은 가히 세계적인 명성의 민주주의 맛집이라 불릴만도 하다.

이러한 집회들이 제도화되어 '합법적 집회', '합법적 시위' 등의 역설이 사회질서와 규범의 일부로서 자리잡은 것은 문민정부 수립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6공화국 헌법이 수립되기 이전 87년의 항쟁, 대학가의 학생운동, 그 이전 80년 광주항쟁은 경찰서에 신고하고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하며 시간이 되면 해산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최승자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머리 위에 하늘처럼 드리운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빼앗긴 무언가를 되찾기 위한 저항 및 투쟁이었다. 빼앗긴 무언가, 즉 '진정한 민주사회'라는 목표는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기표였기 때문에 운동에 참여하거나 공감했던 사람이 제각기 다른 그림을 그렸을지 몰라도, 이들이 익명의 대중으로서 한 목소리를 내고 10여년에 걸쳐 지속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던 근거는 공통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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