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시대 –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죽음들
2023/09/12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양상은 같지만, 사회적 애도와 공적 애도는 죽음에 이르게 된 양상과 그 죽음이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반향이 다르기 때문에 죽음을 대하는 감정 또한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적 애도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던 이에 대한 흠모에 따른 감정적 여운이 짙게 나타나지만, 사회적 애도에서는 정서적 공감과 유대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공적 애도의 대상이 된 죽음은 거의 대부분 문제적이지 않은 자연사이지만, 사회적 애도의 대상은 전부가 문제적인 죽음으로 자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생겨난 사회적 애도의 대상은 대중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타인의 죽음에 대한 성숙한 문화가 생긴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과 인연이 없었고, 사회적으로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그 사회가 타인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애도는 그렇게 해석할 수 ...
@소다
사회가 자꾸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들은 그걸 그냥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상황들이 이어지다 보니 체념으로 이어지고요.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뭔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데, 임계점을 넘어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이니 최대한 애를 써보려고 합니다. 그게 제 나름의 대처가 아닌가 싶습니다. ^^
정말이지 공감가는 칼럼입니다. 애도의 시대...탄광의 카나리아같은 죽음들.. 허망하고 억울한 죽음들이 늘려있습니다.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 각자 도생하는 사회입니다. 늘 긴장의 연속, 사람들이 개인 주의로 전략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그저 시대의 흐름으로 여기기엔 너무 반복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품격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치열하고 과열된 언어들로만 발언하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여럿이 모여 나누는 대화조차도 피하고 싶을 정도예요. 낮아지고 잔잔해도 될 것 같은데요... 고맙습니다!^^
모리스 블랑쇼의 말이 인상적이네요. 주변에는 다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자본주의 관점에 찌들어 시니컬 하게 혹은 스쿠루지처럼만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런 글귀를 보니 명예 같은 개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네요.
정말이지 공감가는 칼럼입니다. 애도의 시대...탄광의 카나리아같은 죽음들.. 허망하고 억울한 죽음들이 늘려있습니다.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 각자 도생하는 사회입니다. 늘 긴장의 연속, 사람들이 개인 주의로 전략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그저 시대의 흐름으로 여기기엔 너무 반복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모리스 블랑쇼의 말이 인상적이네요. 주변에는 다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자본주의 관점에 찌들어 시니컬 하게 혹은 스쿠루지처럼만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런 글귀를 보니 명예 같은 개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