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들의 교회 탈출기 (3)

이화경
이화경 · 프리랜서 작가
2024/04/15

4. 전쟁의 서막 

교인들과의 허니문은 그러나, 그리 길지 못했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을 교인들이 그토록 환대한 데에는 다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부임할 당시, 이 교회는 돌아가신 설립자 목사님 파(이하 설립파)와 정운교 장로파(이하 장로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수석 장로였던 정운교 장로를 중심으로 만만치 않은 세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대개는 지역 유지들이었다. 부자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파벌이 구축되어 있었던 것. 이에 반해 설립파 쪽 장로들과 교인들은 대체로 가난했다. 게다가 설립자 목사님은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 장로파 입장에선 새로 부임한 목사만 ‘아바타’ 만들어 버리면 교회 접수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양쪽 파 모두 아버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에서 ‘잘하기’ 경쟁을 벌였다. 

장로파 교인들은 아버지와 우리 가족을 맛집으로 끌고 다니고, 온갖 산해진미를 대접하며 공을 들였다. 설립파 교인들 역시 집에서 정성껏 한 반찬들과 요리들을 하루가 멀다고 사택에 퍼 나르며 아버지를 포섭하려 애썼다. 한 1년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사태를 관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는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아버지는 설립파의 편에 섰다. 돌아가신 설립자 목사님의 사모님과 그 여동생이 한 집에 살고 있었고, 그 아들이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시무하고 있었다. 목사님이 돌아가시자마자 장로파는 설립자의 남은 가족들 모두를 내쫓으려 했다. 

장로회 헌법에 의하면 담임목사 사망 시 교회는 그 배우자와 유가족을 돌보아야 했다. 그 말은 퇴직금 등의 전별금 뿐 아니라 그 배우자가 사망할 때까지 매달 사례비를 지급해야 함을 뜻했다. 장로파 쪽에선 설립자 가족들을 우리가 왜 챙겨야 하느냐며 당장 나가라고 종용했다. 설립파 쪽 입장은 우리 손으로 벽돌 날라 가며 세운 교회, 평생 섬길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장로파에선 전도사로 시무 중인 아들을 거론하며 결국 저 아들을 목사로 앉히려는 속셈 아니냐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설립파에선 아들 전도사를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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