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사랑은 미움을 이겼을까요?

유태하
유태하 · 창작중
2024/04/09
직접 촬영
걔는 밉살맞은 애였다. 자신밖에 모르고, 자기 잘 되고 싶은 이야기밖에 안 하면서 나에게 왜 연락을 해서 자기 들러리를 세우려 드는 지 모를 애였다. 네이트 판 같은 인터넷 공론장에 걔와 나의 이야기를 쓰면 댓글의 반 정도는 내게 호구냐고 타박을 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기울어진 마음을 많이 내어 주었던 애였다. 그렇게까지 애썼던 이유는 얘랑 어차피 안 보게 될 걸 알아서 였을까. 결국 못 보는 걸 선택할 만큼 버거운 걔를 나의 노력이나 애정, 현명함으로 연장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였을까.


'그러면 걔가 아니라 내가 문제 있는 사람이 되잖아. 그렇진 않아.'


나는 과한 죄책감을 먼지 털듯 훌훌 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계를 일그러뜨릴 만큼의 인격적 결함이 내게 있지는 않았다. 그럼 걔가 다 나쁜가 하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하자 많은 걔지만 자기 나름대로 잘 해야 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잘 할 거였다. 관계의 요점 정리가 필요했다. 부족한 건 누군가가 상성이 안 맞을 걸 직감하면서도, 누가 내가 좋다고 하면 나도 좋고 보는 나였다.


버스에 가만히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붕붕 달려나가는 차의 진동에 머리가 덜덜 흔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걔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찼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이 사람이, 걔와의 관계가 시사하는 교훈이 뭘까 하는 고민이었다.


 해로운 관계란 삶을 향한 나의 긍정적인 열정을 빼앗아 가는 관계를 말한다. 나의 시간이나 돈이나, 권리를 상대방에게 빼앗기는 상태를 기준 삼을 수 있다. 그리고 물질적인 무언가를 도둑맞기 전에 가치관 변화를 유도당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나쁜 건 나쁘다고 말 하는 게 맞다 생각하는 편이라 표현을 에둘러 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해로운 관계라는 표현이란 다소 직설적인 모양이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뒤져보는 관계 관련 글에서는 '건강하지 못한' 이란 말이 명사화 되어서 쓰이는...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문화로 이어질 수 있는 사람의 정서적 훈련과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친족성폭력 트라우마 회복 에세이 <기록토끼>, 첫 글에 게시하는 중입니다. whitepoodlelovy@gmail.com
27
팔로워 73
팔로잉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