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와 나사, 힘의 논리를 뒤집기
2024/05/08
벌써 몇 해 전, 우리 랩에서는 <위기 앞에서 30초를 버는 방법1)>이라는 이름으로 주짓수를 함께 배워보는 워크숍을 열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의 여파로 당시 ‘호신'은 많은 여성의 당면 과제이자 관심사로 떠올랐고, 같은 시기 특히 여성의 호응을 얻지 못했던 다른 행사와는 다르게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태도, 함께 나눈 몸의 경험, 공감 백배의 대화 등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난 사실 주최하는 입장인 데다 출산 예정일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있던 시점이기도 해서 많은 동작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처음 만난 이들이 서로 팔을 잡고, 멱살을 움켜쥐다가 몸도 마음도 이내 한 덩어리처럼 끈적해지는 풍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강사님이 주짓수를 소개하며 사용했던 다음의 수식어는 그녀가 입고 있던 도복의 파란 색상처럼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몸 기술”
‘여성도 남성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설명이 더해지던 그 순간 나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의 눈도 번뜩이는 것 같았다. 그 반응은 뭐랄까, 내 경우엔, 단순히 주짓수라는 몸 기술에 관한 신기함보다는 ‘살면서 이런 표현을 만난 적이 있던가?’ 하는 놀라움에 가까웠다. 특히 운동처럼 몸을 활용하는 무언가를 접할 때, 힘의 논리는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전제되는 경우가 많기에 이 표현이 낯설고도 신선했다. 살면서 신체적 한계를 깨닫고 절망하던 순간이 얼마나 많던가. 키 제한선에 걸려 타지 못하는 놀이기구 앞에서, 손가락이 짧아서 닿을 수 없었던 두 건반 앞에서, 나는 결코 안 닿는 볼더2)를 하루 체험으로 온 누군가가 타고난 길쭉한 기럭지로 한 번에 걸치는 것을 보게 될 때(아무리 설렁설렁했다지만 오랜 시간의 트레이닝이 무상해지는…)와 같은 순간 말이다. 좌절감이 크든 작든 누구나 그런 일화를 여럿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몸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재인식하게 될 때,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이구나, 단념하고 삼켰던 순간들이 이 표현을 듣는 데 마치 주마등...
음악, 퍼포먼스, 설치 등 경계 없는 미디어 창작을 수행하면서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서울익스프레스'의 구성원이며, 2017년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을 설립하여 기술 문화의 다양성과 접근성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