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도 뒷 바다에 정박한 영길리국의 배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4/06/30
1832년, 순조 32년 6월 20일(음력) 영길리(영국)의 배가 황해도 장산곶에 도착했다.

이전에도 서양 배가 탐험해서 오거나 표류하다가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서로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으므로 손짓발짓 하다가 돌아가는 게 보통의 일이었다. 덕분에 조선은 서양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 나라였다. 서양에 조선이 알려지게 된 것은 한 표류민 때문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선원 하멜이 표류해왔다가 오랜 세월 조선에 억류당한 바 있었다. 그는 탈출을 감행해 동인도회사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는데, 그곳에서 밀린 월급을 달라는 청구서를 작성했다. 자신이 회사일을 수행하다 어떻게 해서 오랜 시간 못 돌아왔는지에 대한 해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자세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하멜 표류기>이다.

이를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서양에 알려졌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휴 해밀턴 린지(Hugh Hamilton Lindsay, 1802-1881) 선장이 조선에 대해서 흥미를 느꼈다.
Sir W. Young이 그린 휴 해밀턴 린지의 초상
그는 동인도 회사의 이사 휴 린지의 아들로 1820년부터 중국에서 일했다. 1832년에는  루터교 선교사인 칼 귀츨라프(Karl Gützlaff, 1803~1851)와 함께 중국 항구를 염탐하는 일을 함으로써 아편 전쟁에 기여했다.

이 염탐 작업이 끝난 뒤 그는 아마도 <하멜 표류기>를 통해 알게 된 조선을 향해 항로를 잡은 것 같다. 린지가 후일 남긴 회고록을 보면 그들은 임진왜란 때 예수회 신부들이 교황청에 올린 보고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마침 불어오는 강풍을 따라 이들은 황해도 장산곶 일대에 도착했던 모양이다.

그와 칼 귀츨라프는 둘 다 중국어에 능통했다.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선의 관리들과 의사 소통이 가능했다. 덕분에 순조실록에는 이들이 해준 말이 상세히 적혀 있다.

칼 귀츨라프는 조선에 온 최초의 서양선교사이다. 그는 한문 성경을 건네주고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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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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